♧ 봄 잠
이것저것 잃어버리다
하나 남은 봄 잠
산자락에서 잃어버리다
천왕사
종소리
깔고 누워
들풀 세상 헤매어 다니다
지난겨울 살아남은
눈 소리
꿩 소리
속
떠돌아다니다
아릿아릿
봄 햇살
귓바퀴에 감기는 소리
깨어나 보니
잃어버리다
다 야원 봄잠
한 장
돈 구름 투기하다
돈벼락 맞았다는 벼락부자들
하늘 높아도 알 바 없는 경제 뉴스
세무조사해서 세금 추징 한단다 히히히
휴지 쪽처럼 붕붕거리며
봄바람 타고 날아다니는
오후 3시
♧ 파닥파닥
파닥파닥
별도오름 바닷가에서
두 손 파닥이며
날아오를 연습하다
파닥파닥
날아올라
빙빙 바위 위를
갈매기 하나
아득히 나돌아간다
패랭이꽃들
꽃 피우는 시간
눈썹 위로 떠나는 배들
금 간 수평선
하얗게
굶어죽은 물결들
재우고
저녁 햇살들
눈감아도
파닥파닥
날아오른다
파닥파닥
♧ 우연
꿩 꿩 꿩
언제나 제 이름 밝힌다
가시덤불 무성한 둘판
달래 캐다
푸드득 푸드득
깜작 놀라 허리 펴면
꿩 꿩 꿩
장끼 날고 눈부시게
여린 햇살들
천 갈래 만 갈래로 부서진다
부서지는 햇살의 둘레
그 아래
흔들리는 볼레낭들
까마귀머루 새싹들 들끓고
개불알꽃도 쪼그리고 앉아
홍자색 꽃들
겁결에 캑캑
토해낸다 캑캑
♧ 거울 속엔
얘야, 할아버지가 있네 거울 속엔
보아라
할아비 때 묻은 나날들
바람 소리들
살고 있네 바람소리로 열리는
이 풍진세상 별 같은 녀석들
살고 있는 하늘 점점
거세어져 가는 바람 소리
핏빛 무지개들
산산이 찢어져 있네
캄캄해지는 하늘 점점
보아라, 하늘이 없네, 별들도, 달도
거울 속엔, 얘야!
바람 소리도
할아비도
♧ 백년 만에 눈 내린다
무더위 속으로 백년 만에
눈 내린다 정말로
눈은 하얗다
거짓말도 하얗다
하느님 하늘 안에 있지 않고
하느님 하늘 밖에 있지 않고
그러므로
죽은 자 죽어 망각 속에 있고
사는 자 살아 거짓 속에 있고
세상은 돌고 있다 부지런히
살고 있다 죽기 위해
눈 내린다 백년 만에
하얗다
하느님
♧ 연등 켜고
해마다
새 울고
꽃 피고
파란 바람 부는
5월 오면 함께
오시는 분
연등 켜고
연등 달고
굶주리는 자
목마른 자
병든 자
출세하고 싶어 하는 자
돈 벌고 싶어 하는 자
자비를 베푸소서
새 울고
꽃 지고
파란 바람 부는
5월에
모두에게
* 문충성 시집 『빈 길』(각, 20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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