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문충성 시집 '빈 길'의 시(3)

김창집 2022. 4. 29. 00:11

 

봄 잠

 

이것저것 잃어버리다

하나 남은 봄 잠

산자락에서 잃어버리다

천왕사

종소리

깔고 누워

들풀 세상 헤매어 다니다

 

지난겨울 살아남은

눈 소리

꿩 소리

떠돌아다니다

아릿아릿

봄 햇살

귓바퀴에 감기는 소리

 

깨어나 보니

잃어버리다

다 야원 봄잠

한 장

돈 구름 투기하다

돈벼락 맞았다는 벼락부자들

 

하늘 높아도 알 바 없는 경제 뉴스

세무조사해서 세금 추징 한단다 히히히

휴지 쪽처럼 붕붕거리며

봄바람 타고 날아다니는

오후 3

 

 

 

파닥파닥

 

파닥파닥

별도오름 바닷가에서

두 손 파닥이며

날아오를 연습하다

파닥파닥

날아올라

빙빙 바위 위를

 

갈매기 하나

아득히 나돌아간다

패랭이꽃들

꽃 피우는 시간

 

눈썹 위로 떠나는 배들

금 간 수평선

하얗게

굶어죽은 물결들

재우고

 

저녁 햇살들

눈감아도

파닥파닥

날아오른다

파닥파닥

 

 

 

우연

 

꿩 꿩 꿩

언제나 제 이름 밝힌다

가시덤불 무성한 둘판

달래 캐다

푸드득 푸드득

깜작 놀라 허리 펴면

꿩 꿩 꿩

 

장끼 날고 눈부시게

여린 햇살들

천 갈래 만 갈래로 부서진다

부서지는 햇살의 둘레

그 아래

흔들리는 볼레낭들

 

까마귀머루 새싹들 들끓고

개불알꽃도 쪼그리고 앉아

홍자색 꽃들

겁결에 캑캑

토해낸다 캑캑

 

 

 

거울 속엔

 

얘야, 할아버지가 있네 거울 속엔

보아라

할아비 때 묻은 나날들

바람 소리들

 

살고 있네 바람소리로 열리는

이 풍진세상 별 같은 녀석들

살고 있는 하늘 점점

거세어져 가는 바람 소리

핏빛 무지개들

산산이 찢어져 있네

 

캄캄해지는 하늘 점점

보아라, 하늘이 없네, 별들도, 달도

거울 속엔, 얘야!

바람 소리도

할아비도

 

 

 

백년 만에 눈 내린다

 

무더위 속으로 백년 만에

눈 내린다 정말로

 

눈은 하얗다

거짓말도 하얗다

 

하느님 하늘 안에 있지 않고

하느님 하늘 밖에 있지 않고

그러므로

죽은 자 죽어 망각 속에 있고

사는 자 살아 거짓 속에 있고

 

세상은 돌고 있다 부지런히

살고 있다 죽기 위해

눈 내린다 백년 만에

 

하얗다

하느님

 

 

 

연등 켜고

 

해마다

새 울고

꽃 피고

파란 바람 부는

5월 오면 함께

오시는 분

 

연등 켜고

연등 달고

 

굶주리는 자

목마른 자

병든 자

출세하고 싶어 하는 자

돈 벌고 싶어 하는 자

 

자비를 베푸소서

새 울고

꽃 지고

파란 바람 부는

5월에

모두에게

 

 

                            * 문충성 시집 빈 길(, 200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