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문충성 시집 '빈 길'의 시(4)

김창집 2022. 5. 6. 05:59

 

불새

 

보아라, 새파랗게

바람 부는 푸른 날

우리 가슴 속엔 새해가 떠오른다

탐라 오천 년

영욕이 흘러 흘러

드높아 가는 한라

제주바다 짙푸르러 가난과

한숨의 껍질들

벗겨내자 새 천년

새 제주 탄생했나니

천지

새하얗게

날아오르는 불새

꿈꾸는 불새 되어 우리 모두

이 섬

온갖 빛나는 그리움들

한데 모아 눈부시게

예술의 꽃

노래 불러

제주를 꽃피워내자

세계인들

그 꽃 속에 살게 하자

물안개 흐르는 백록 정상에 서면

수평선

아득히

찾아 떠돌던 젊은 날

눈물 속으로 젖어드는

새 이어도여!

보아라, 찬란하게

새 하늘 열려 오나니!

 

 

 

연어의 귀향

 

몇 년 만에 돌아가는 길이냐

태평양

그 깊고 넓은 바다 어디쯤

시퍼렇게 떠돌다

하천이 폭포 되어 뛰어내리기도 하는 곳

건너

따스한 햇살

만물 키워내는

그 아름다운 곳

회색곰들

흰부리독수리들

우리 죽음 겨냥하고 있다지만

우리는 어쩌지 못하리

달 없는 밤에도

별 없는 밤에도

우리는 우리 죽음 헤엄쳐

귀향하느니

배고픈 너희들, 너희들아! 과연

우리 죽음 뜯어먹고 살겠느냐

핏빛 그리움들

바람결에 녹아나는

아아

그 곳

철없던 어린 날 떠나

수만 리

낯선 세상 떠돌다

철들고 나서

빈 손 들고

마지막 번지 없는

고향

죽음 한줌 등에 지고

나를 찾아가느니

 

 

 

입춘立春 무렵

 

손녀 얼굴 보는 입춘 무렵

서울은 영상이다

초점도 못 맞추는

40일짜리 눈동자에

어리는 할아비 얼굴

산그늘처럼 보얗구나

아엠에프 극복했다 세상은

이제

봄이라지만

아직

멀어

늦겨울 한강이

겨우 살얼음 머리칼 풀며 흘러간다

황해로 황해로만 흘러간다

그래 봄 오는 제주로 가자

봄빛 찾아보지만

국제자유도시

어쩌구 떠드는 제주에도

마찬가지

봄은 오지 않았다

어느새

보얀 눈동자에

어리는 봄

얼굴

너무 이른 봄

졸음에 고즈넉이

흐리구나

 

 

 

아주 자그만 노래

 

아무것이나 사양하지 않는다

가장 유치한 장난감들

색연필들

글자익히기 책들, 기역, 니은

모두 네 살짜리 언니가 쓰던 것들

이 세상

자그만 손에 잡히는 것들

건드린다

돌린다

맛본다

모두

먹으려 하지만 먹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즐겁구나!

똥 냄새로 열리는 장난감 세상

즐겁다

먼지 하나 없다

운다, 똥을 싼다

열 달짜리 생, 지구 끝까지

잠자는 것을 밀어내 버린다

 

 

 

파르르르

 

천지가

하나로

타오른다

서녘하늘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어느새

하늘로

잦아들어

아득히

풀린다 노을로

날갯짓

그림자만

파르르르

파닥인다

금빛으로

남아

 

 

 

동학사東鶴寺

 

가는 길에

비 내린다

유흥 손님들

관광 자동차들

싸구려 기념품들

넘쳐난다

계룡산

동학사

나무관세음보살

빗속으로

벚꽃들

무성하게 자라나는

팔도 사투리

이윽고

빗속으로 진다

컴컴하게

오는 길에

비 내린다

   

 

                             *문충성 시집 빈길(, 200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