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2년 봄호의 시조

김창집 2022. 5. 5. 08:11

 

전지적 시점으로도 나를 찾지 못하는 김연미

 

나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벼랑이 되어 돌아온 날

무너져 내리고 싶다 빵처럼 부풀던 허공

세 번쯤 부정해 볼까 내가 소멸할지 몰라

 

목에 쌓인 먼지처럼 까끌거리는 별을 두고

그 너머 배경이 된 어둠이 되고 싶어

열두 살 눈동자 속에 숨어사는 까만 빛

 

전지적 시점으로도 나를 찾을 순 없을 거야

무중력 공간 속으로 유영하는 생각들이

이제 막 추락의 지점을 넘어가고 있었다

 

 

 

남바람꽃 - 김영란

 

  안부를 묻는 것도 불안불안 했었지

 

  해안선 5킬로 이내로 하산 하란 그 명령 바들바들 떨렸지 거처할 곳 없었지 세 차례 개명으로 난세를 타고 넘었지 바람의 땅에선 바람처럼 살아야 해 한라산바람 남방바람 아냐 그냥 남바람이라 할 거야

 

  사월의 중산간 들녘

  소곤소곤 바람 분다

 

 

 

진아영 김정숙

 

단지 집 앞에서

총 한 번 맞았을 뿐?

 

단지 오인해서

턱이 날아갔을 뿐?

 

소설도 영화도 아니 그림도 말도 아니

 

눈물 아니

고통 아니

삶도 아니

사랑도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서

증거가 될 뿐

, 진아영이었을 뿐

 

 

 

철원의 별 - 김진숙

 

아마 저 별은

희디흰 뼛조각일 거야

 

서로의 심장을 향해

겨누던 총구일 거야

 

밤이면

몰래 내려와

지뢰 찾던

눈일 거야

 

 

 

2월의 피라칸사스 오영호

 

집콕만 하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는

지인의 한마디에 벙거지 눌러 쓰고

가는 길 칼바람에도 맞짱뜨는 너 만나

눈빛을 마주치자 불꽃이 일렁거려

몸이 따뜻해지고 귀가 밝아지더니

매화향 담 넘어 달려와 마스크를 벗기는.

 

 

 

홀에미섬* - 이애자

 

대정 땅만 밟으면 살아나는 바람이라

대정 땅만 밟으면 살아나는 불씨라

누구라 이곳에 와서 얕은 생각 품을까

 

지아비 보내고 자식까지 보낸 어미

부러, 저 거친 물살에 맘 다스리며

긴긴 날 홀로 나앉아 촛불 하나 켜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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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 앞바다에 있는 바위 섬

 

 

                    * 계간 제주작가 2022년 봄호(통권 제7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