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의 시(3)

김창집 2022. 5. 15. 00:06

 

마라도에 가거든

 

마라도에 가거든

섬의 끝이라 말하지 말라

한반도의 마침표에 섰다고

말하지 말라

 

마라섬에서는

부처님도 북으로 향해 앉고

예배당의 문도 북으로 통해 있다

 

남쪽으로 가서

북쪽으로 출발하는 섬

국토의 시작 출발의 땅

 

어느 누구도 마라도에 가거든

최남단 섬이라 말하지 말라.

 

 

 

다시 마라도에 가서

 

다시 마라도에 가서

바닷물에 몸을 씻고 옵니다

 

멍석처럼 말아오는 파도에

씻기고 씻긴 돌멩이 하나

주워들고 옵니다.

 

몇 개의 자음과 모음이 빛나는

이름자 새겨놓은 돌멩이

 

돌아오는 뱃길

인당수 같은 푸른 바다 가운데

던져버립니다

미련 없이 버립니다

 

소중한 것은 이름자가 아님을.

 

 

 

섬의 존재

 

섬 안의 섬을

찾아갑니다

 

섬의 존재를 위해

바다는 물을 끌어들입니다

이 나라의 수많은 강물

냇물들

바다를 향해

달리기 합니다

산을 데불고

숲을 데불고

 

섬사람들은 섬을 지고

물과 함께 삽니다.

 

 

 

날지 못해 우는 새

 

<마라도호> 선상에서는 몸이 가볍습니다

 

온몸의 뼈골들이

물 속으로 빠져 달아나고

하얗게 마른 살덩이

날개마저 젖어버립니다

 

날지 못해 우는 새

마라섬에서는

꺼이꺼이 울음만 남고

 

먼 하늘 향해 바위가 되었습니다

기다림의 눈물 바위가 되었습니다.

 

 

 

울음 낳는 섬

 

나는 파도가 됩니다

마라섬 맴도는 물결이 됩니다

 

울음 낳는 섬, 마라도여

하얀 억새꽃

어둠의 바다를 밝히는 불빛

허리 껴안고

멀리 달아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밤새 뒤척이는

속바다 울리는 강물이 됩니다.

 

 

 

마라섬의 유래

 

마라섬에는 큰 나무가 없습니다

뱀이 없습니다

 

그 옛날 섬이 불타오를 때

전설 같은 노을의 붉은 안개 솟아오를 때

바다는 멀리 달아났고

땅이 죽었습니다

까맣게

해골만 남은 바위섬이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 패인 웅덩이

파도에 밀린

억새풀 마른 언덕

모든 것은 죽고

세월처럼 뼈만 남았습니다.

 

 

                         *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서울문화사, 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