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도에 가거든
마라도에 가거든
섬의 끝이라 말하지 말라
한반도의 마침표에 섰다고
말하지 말라
마라섬에서는
부처님도 북으로 향해 앉고
예배당의 문도 북으로 통해 있다
남쪽으로 가서
북쪽으로 출발하는 섬
국토의 시작 출발의 땅
어느 누구도 마라도에 가거든
최남단 섬이라 말하지 말라.
♧ 다시 마라도에 가서
다시 마라도에 가서
바닷물에 몸을 씻고 옵니다
멍석처럼 말아오는 파도에
씻기고 씻긴 돌멩이 하나
주워들고 옵니다.
몇 개의 자음과 모음이 빛나는
이름자 새겨놓은 돌멩이
돌아오는 뱃길
인당수 같은 푸른 바다 가운데
던져버립니다
미련 없이 버립니다
소중한 것은 이름자가 아님을.
♧ 섬의 존재
섬 안의 섬을
찾아갑니다
섬의 존재를 위해
바다는 물을 끌어들입니다
이 나라의 수많은 강물
냇물들
바다를 향해
달리기 합니다
산을 데불고
숲을 데불고
섬사람들은 섬을 지고
물과 함께 삽니다.
♧ 날지 못해 우는 새
<마라도호> 선상에서는 몸이 가볍습니다
온몸의 뼈골들이
물 속으로 빠져 달아나고
하얗게 마른 살덩이
날개마저 젖어버립니다
날지 못해 우는 새
마라섬에서는
꺼이꺼이 울음만 남고
먼 하늘 향해 바위가 되었습니다
기다림의 눈물 바위가 되었습니다.
♧ 울음 낳는 섬
나는 파도가 됩니다
마라섬 맴도는 물결이 됩니다
울음 낳는 섬, 마라도여
하얀 억새꽃
어둠의 바다를 밝히는 불빛
허리 껴안고
멀리 달아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밤새 뒤척이는
속바다 울리는 강물이 됩니다.
♧ 마라섬의 유래
마라섬에는 큰 나무가 없습니다
뱀이 없습니다
그 옛날 섬이 불타오를 때
전설 같은 노을의 붉은 안개 솟아오를 때
바다는 멀리 달아났고
땅이 죽었습니다
까맣게
해골만 남은 바위섬이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 패인 웅덩이
파도에 밀린
억새풀 마른 언덕
모든 것은 죽고
세월처럼 뼈만 남았습니다.
*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서울문화사, 20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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