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의 시(1)

김창집 2022. 5. 16. 01:53

 

漢拏山(한라산)

 

南海(남해)

청잣빛 하늘에

높이 솟은 메뿌리

 

落花(낙화)처럼

落葉(낙엽)처럼

어지러이 날러가는 세월을 받아

 

年輪(연륜) 쌓이는

푸른 허리에는

답답한 역사도 흘렀으련만

 

오늘은 泰然(태연)스럽게

흰 구름의 나래옷을 감아 두르고

 

煙波(연파) 아롱이는

水平(수평)

부풀은 思慕(사모)

더듬는

 

젊은 耽羅王子(탐라왕자)

 

 

 

觀德亭(관덕정)

 

아무도 없구나.

 

기척 없이 겹겹이 굽이쳐내리던

아득한 風霜(풍상)의 아쉬운 꿈을 울려

처마 끝마다

출렁이는 바닷소리.

 

風流(풍류) 끊긴 ()

흘러간 흰 구름을

기왓골 이끼마다

지저귀는 참새 울음.

 

勳章(훈장)이며 殺戮(살육)이며

비바람을 몰아

守令(수령)號令(호령)소리 피리소리 북소리를

속으로만 가꾸어온 잔잔한 音響(음향).

 

지워진 듯 지워진 듯 다시 또렷한 듯

無數(무수)祖上(조상)들이 指紋(지문)을 간직하고

아름찬 기둥으로 千年(천년)을 받들은 채

 

이제는

이제는 일체를 잊었노라

泰山(태산) 같은 무게를 다스려 섰다.

 

 

 

()

 

비가 내리는

언덕에서

()들은 풀을 먹고 있다.

 

비를 맞으며

()들은

부지런히 풀을 뜯고 있다.

 

모두가 풀을 뜯고 있는데

가만히 서 있는 놈이 있다.

 

무거운

비구름을 향해

………

하고 울기도 한다.

 

저녁은 가까워 오는데

돌아갈

길도

아득한

들판에서

 

목동은

우비도 없이

비에 젖는데

()들은 부지런히 풀을 뜯는데……

 

 

 

黑珊瑚(흑산호)

 

開闢(개벽)의 거친 노래와

末世(말세)의 숨 가쁜 하소연이

잠잠히 고여 푸르름을 지녀있는 곳.

 

바다 천길 밑에

宇宙(우주)哀樂(애락)을 눈감아 노래하는

異端(이단)實體(실체)가 있다.

 

아득한 太初(태초)

음양이 찢겨 갈리던 날의

눈물도 없던 참극의 소생

 

정동의 부풀은 혈맥도

고운 빛 葉綠(엽록)도 없이

어느 先祖(선조)贖罪(속죄)後孫(후손)이던가

바위처럼 살아가는

바위의 겨레도 아니란다.

 

항시

원시의 빛 거룩한 어두움을 섬겨

黑色(흑색)同化(동화)하는 눈부신 기쁨 속에

 

해도 熱病患者(열병환자)

또한 微生物(미생물)

알뜰히 元素(원소)로 환원하고

 

찢겨 갈린 陰陽(음양) 한 곬으로 돌아가는

悽絶(처절)祭典(제전)을 기다린다.

 

 

 

冬栢(동백)

 

어디를 갔느냐

耽羅(탐라) 千年(천년)의 아득한 하늘.

일체의 아롱진 비밀 겹겹이

못견디게 이는 ()을 곱게 달래며

 

死火山(사화산) 기슭

식어진 憤怒(분노)의 상체기에 서서

微風(미풍)에 흐려지는 表情(표정)도 서러운데

기다리는 姿勢(자세)로 또 한 겨울이 간다.

 

九重(구중) 宮城(궁성) 버리고

사랑에로 내달은 公主(공주)의 마음으로

눈 속에 터뜨린 붉은 情熱(정열) 언저리

어찌하여 아무도 울음조차 없구나.

 

, 그것은

忍辱(인욕) 속에 노래하는 붉은 꽃과 같은 것

非情(비정)의 세상을 찬바람이 부는데

짙푸른 꿈은 버릴 수가 없어

 

愁心歌(수심가)와 같은 歲月(세월)을 빙 빙……

춤을 추고 싶어라. 찢어진 북을 메고

어쩔 수 없는 이 자리의 悲劇(비극)

팔다리 휘어지도록 춤이라도 추고 싶어라.

 

 

                   *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신조문화사, 1963)에서

                * 원문은 한자로만 표기됐는데, 괄호 속에 독음을 넣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