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拏山(한라산)
南海(남해)
청잣빛 하늘에
높이 솟은 메뿌리
落花(낙화)처럼
落葉(낙엽)처럼
어지러이 날러가는 세월을 받아
年輪(연륜) 쌓이는
푸른 허리에는
답답한 역사도 흘렀으련만
오늘은 泰然(태연)스럽게
흰 구름의 나래옷을 감아 두르고
煙波(연파) 아롱이는
水平(수평)에
부풀은 思慕(사모)를
더듬는
젊은 耽羅王子(탐라왕자)님
♧ 觀德亭(관덕정)
아무도 없구나.
기척 없이 겹겹이 굽이쳐내리던
아득한 風霜(풍상)의 아쉬운 꿈을 울려
처마 끝마다
출렁이는 바닷소리.
風流(풍류) 끊긴 臺(대)에
흘러간 흰 구름을
기왓골 이끼마다
지저귀는 참새 울음.
勳章(훈장)이며 殺戮(살육)이며
비바람을 몰아
守令(수령)의 號令(호령)소리 피리소리 북소리를
속으로만 가꾸어온 잔잔한 音響(음향).
지워진 듯 지워진 듯 다시 또렷한 듯
無數(무수)한 祖上(조상)들이 指紋(지문)을 간직하고
아름찬 기둥으로 千年(천년)을 받들은 채
이제는
이제는 일체를 잊었노라
泰山(태산) 같은 무게를 다스려 섰다.
♧ 羊(양)
비가 내리는
언덕에서
羊(양)들은 풀을 먹고 있다.
비를 맞으며
羊(양)들은
부지런히 풀을 뜯고 있다.
모두가 풀을 뜯고 있는데
가만히 서 있는 놈이 있다.
무거운
비구름을 향해
매………
하고 울기도 한다.
저녁은 가까워 오는데
돌아갈
길도
아득한
들판에서
목동은
우비도 없이
비에 젖는데
羊(양)들은 부지런히 풀을 뜯는데……
♧ 黑珊瑚(흑산호)
開闢(개벽)의 거친 노래와
末世(말세)의 숨 가쁜 하소연이
잠잠히 고여 푸르름을 지녀있는 곳.
바다 천길 밑에
宇宙(우주)의 哀樂(애락)을 눈감아 노래하는
異端(이단)의 實體(실체)가 있다.
아득한 太初(태초)
음양이 찢겨 갈리던 날의
눈물도 없던 참극의 소생
정동의 부풀은 혈맥도
고운 빛 葉綠(엽록)도 없이
어느 先祖(선조)의 贖罪(속죄)의 後孫(후손)이던가
바위처럼 살아가는
바위의 겨레도 아니란다.
항시
원시의 빛 거룩한 어두움을 섬겨
黑色(흑색)에 同化(동화)하는 눈부신 기쁨 속에
해도 熱病患者(열병환자)도
또한 微生物(미생물)도
알뜰히 元素(원소)로 환원하고
찢겨 갈린 陰陽(음양) 한 곬으로 돌아가는
悽絶(처절)한 祭典(제전)을 기다린다.
♧ 冬栢(동백)
어디를 갔느냐
耽羅(탐라) 千年(천년)의 아득한 하늘.
일체의 아롱진 비밀 겹겹이
못견디게 이는 情(정)을 곱게 달래며
死火山(사화산) 기슭
식어진 憤怒(분노)의 상체기에 서서
微風(미풍)에 흐려지는 表情(표정)도 서러운데
기다리는 姿勢(자세)로 또 한 겨울이 간다.
九重(구중) 宮城(궁성) 버리고
사랑에로 내달은 公主(공주)의 마음으로
눈 속에 터뜨린 붉은 情熱(정열) 언저리
어찌하여 아무도 울음조차 없구나.
아, 그것은
忍辱(인욕) 속에 노래하는 붉은 꽃과 같은 것
非情(비정)의 세상을 찬바람이 부는데
짙푸른 꿈은 버릴 수가 없어
愁心歌(수심가)와 같은 歲月(세월)을 빙 빙……
춤을 추고 싶어라. 찢어진 북을 메고
어쩔 수 없는 이 자리의 悲劇(비극)을
팔다리 휘어지도록 춤이라도 추고 싶어라.
*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신조문화사, 1963)에서
* 원문은 한자로만 표기됐는데, 괄호 속에 독음을 넣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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