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종호 시집 '날개'의 시(2)

김창집 2022. 5. 24. 00:25

 

강물의 노래

 

처음엔

빗방울이었습니다.

 

어느 깊은 산곡에 내려

다만 막막함이었지만

,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첫 음절

음악은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쫄쫄 흐르다가 강물이 넘쳐흐를 때에

사막에서도 툰드라에서도

생명의 노래는 모든 경계선을 지웠습니다.

 

처음엔 한 방울

눈물이었습니다.

 

메마른 가슴으로 내려

, 그것은 거대한 용광로에 첫 화입

너와 내가 녹아서 우리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시작된

흑인영가는 미시시피 큰 강이 범람하였지요.

 

러시아의 눈물, 카튜사 마슬로바는

잔혹한 땅, 시베리아의 얼음을 녹이고

부활’*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한강은 두물머리의 연가를 부르며

햇살 푸른 아침 바다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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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톨스토이의 소설.

 

 

 

그림자 7

   -영혼

 

때로는

호젓한 숲길에서

건듯 불어오는 바람이거니

 

때로는

바다가 너무 넓어서

슬픈 해조음이거니

 

낮달처럼 외로운 날

어이-, 어이-

누구라도 부르고 싶을 때

문득 혼자가 아니었네

 

추적이는 비

모르게 흐느끼다가

해 쨍쨍한 날

어디로 스며버리는

나보다 더 슬픈 이 있네

 

 

 

그림자 2

 

풀잎 새에 하늘거리며

짐짓 먼 산에 눈을 두어보지만

아무 때 어디서나

햇살처럼 일일이 내게로 꽂히는

투명한 시선이 허공으로 있네

 

채워도 채워도 배는 고프고

안아도 안아도 허전한 가슴

실험실 유리 상자 안의 흰쥐

어디에도 네 숨을 곳은 없어

끝없이 사하라 사막을 끌고 간다

 

눈 내리는 들판에서

드디어 너는 보았지

또박또박 발자국을 찍으며

아직도 걸어온 그 길에

돌아갈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네 기록을

 

누구신가

안개처럼 허공을 가리고

내 안에서 나를 기록하는 이여,

그대는 어느 별에서 밀파된

전능자의 눈동자인가

 

 

 

이 겨울에

 

이 겨울

땅에 엎드린 인고 위로

눈이 내린다

 

고귀한 삶을 위하여

한 번은 죽어야 한다

 

죽지 않는 삶은 신이 없는 세상

원색의 본능으로 죽어야 한다

 

사랑을 번제를 드린 후

맑은 햇살 눈부시게

눈이 내린다

 

누구라 차마 범하랴

저 깊은 무채색의 콘트라스트

원색의 본능으로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 2

 

흙의 가슴으로

하늘을 세우려는

적막한 의지

 

바람에 흔들리며

눈비에 질척거리는 저만치

휘돌아 보이지 않는 길에

삶은 몰래 피었다 지는 꽃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숨이 차서 달리는 계절에

산 하나 지고 가는

누구나

저 숲에 외로운 나무

 

푸름을 가꾸며

가을 속을 걸어가는 고요

나무는 아름답다.

 

 

 

책장

 

숲으로 가리라, 그 세월

나무처럼 꼬장꼬장하게 서서

숲의 이야기를 꿈꾸고 있다

 

황무한 가슴에

나무를 심어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들기를

실로 오래 기다려온 도열

 

길 잃은 시간에

허탄한 열정은 탕진하고

잠 못 드는 긴 밤

네 유폐된 열망을 듣는다

 

그대 사랑 진실하기에

탕자의 깨달음으로

그대를 부르노라

남은 날을 다하여 부르리라

 

 

                                             *김종호 시집 날개(푸른사상,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