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의 시(2)

김창집 2022. 5. 22. 03:02

 

五月(오월) 하늘

 

감은 눈

살포시 뜨다

방긋 웃는

 

서늘한

少女(소녀)의 눈동자엔

흰구름이 떴네

 

마음 실

끝없는 푸르름에

복스레 부풀어오른

 

연보라

少女(소녀)의 가슴에는

종다리가 우네

 

치마 폭

사르르 스쳐가는

맑은 속삭임

 

머언 먼

그리움에

고향이 돌아가네

 

 

 

목소리

 

  어느 세월에고 봄과 바람과 빗발 같은 것이 기척 없이 스쳤던 골짜기에서 오늘은 뭇 기원의 자세 더불어 피보다 진한 노을로 타오르는 마음을……

 

  빈 자리에 서서 아드막히 외치어 보면 어느 靑山(청산)이 받아 되 보내오는 잔잔한 메아리에 불붙는 님의 목소리를 눈 감아 들어 본다.

 

  누를 길 없는 가슴이 울음처럼 터지어 나간 음향이건만 산과 골짜구니를 스쳐 ()領土(영토)까지를 울림하여 내달아도 보람을 찾지 못하고 피곤히 되돌아온 피 묻은 목소리여!

 

  ……… 山寺(산사)()소리도 累億(누억)煩惱(번뇌)를 모두어 九天(구천)에 닿아라 俗世(속세)를 마구 뒤흔들어 처량히 울었건만………

 

  허전히 문어져 가는 色相 뒤에서 잔잔한 波動(파동)으로 곱게 무늬 지으며 무한히 무한히 번져나가는 空白(공백)無意味(무의미)하다.

 

 

 

구름

 

  언젠가는 기어코 슬어져가야 하고 그것들이 또 언젠가는 있었던 것 같지도 않으리만치 까마득히 잊어버려야 하는 그러한 있음들이 지닌 통절한 외로움이 永遠(영원)이라 불리우는 무수한 시간의 어느 瞬刻(순간)마다 고요한 메아리로 하늘 높이 잇달아 소리 없이 윙윙거리는 蒼茫(창망)無我境(무아경)靜動(정동)氣流(기류)를 타고 아스라이 비껴나가는 表情(표정).

 

  우럴어 받들은 저 表情(표정)開闢(개벽)의 거센 餘韻(여운)을 이끌고 아사달 서라벌의 아득함을 비껴 구비쳐 내려 蒼蒼 萬劫(창창만겁)을 굽어 숨결도 고요한 넓은 微笑(미소)이면서 그대로의 서글픔.

 

  確實(확실)히 저건 속절없는 緣由(연유), 그 많은 靈魂(영혼)들이 아름다웁던 사람들이 자꾸만 憂鬱(우울)해져가는 意味(의미), 식어가는 휴식 위에 안타까이 나부끼는 하이얀 情熱(정열), 어제의 충혈된 삶이 熱禱(열도)이면 차라리 華麗(화려)하게 喀血(객혈)하는 노을 속에 우뢰의 노여움을 머금어 乾坤(건곤)의 휘엉청 울림할 때까지 거창한 絶叫(절규)라도 터지었을 것을……

 

  시방은 어제와 내일 사이의 희멀껀 空白(공백)을 저기 모두가 흐른다 보아라. 세월도 想念(상념)도 사랑도 미움도…… 쾅 쾅 瀑布水(폭포수)九天(구천)에서 내리 쏟아지기도 하고 꽃가지 그늘로 맑은 ()을 타고 은밀히 스쳐버린 그리움일랑 모두 다 모두 다 아득막히 흐르는 건너편 千古(천고)觀音(관음) 색시공(色是空)悠悠(유유) 寬大(관대)함이여, 嗚呼(오호)!

 

 

 

古墳(고분)

 

세상으로부터 외로이 빠져 나온

변두리의 땅에

없는 기와같이 조용히

이끼 묻은 침묵이 있었고나

 

그 어느

화려한 젊음도 피었었을

슬픈 人生(인생)의 꿈이란

바람 부는 영마루 위에

청머루 덩굴만 덮이었으니

 

萬象(만상)과 사람의 넋이

서로 얽히며 아스라이 굽이치는

계절과 계절의 끝없는 물줄기에 서서

구름 자욱한 始終(시종)을 느껴본다.

 

아득한 어디

어지러운 저자의 須臾(수유)를 맞아

哀歡(애환)하는 人情(인정)에는 아랑곳도 없이

 

여기는

歲月(세월)과 더불어 조용한 沈默(침묵)

 

노고지리가 울어 오르면

봄을 알고

 

丹楓(단풍)같은 세월이 뚝뚝 지면

그것은, 슬퍼할 까닭도 없는 가을이 깃들었음을 알리라.

 

 

 

詩人(시인)에게

 

虛無(허무)와 맞선 처절한 몸부림은

終熄(종식)될 날이 끝없이 아득하리라.

 

勇敢(용감)先驅者(선구자)

詩人(시인)의 이름으로 너를 맞으리니

오랜 世紀(세기)를 두고 累族(누족)植民地(식민지)였던

人間(인간)領土(영토)를 도루 찾아 나서라.

 

人間(인간)領土(영토)

地獄(지옥)일 수도 없는 것,

또한 天國(천국)일 수도 없는 것,

그러면서

()도 살고 惡魔(악마)도 살 수 있는

한 없이 넓은 나라.

 

人間(인간)領土(영토)라면

달그림자 내려앉은 낮은 湖水(호수)라도 좋고

蒼波(창파)에 둘러싸인 먼 孤島(고도)라도 좋고

汚物(오물)이 흘러넘치는 共同便所(공동변소)라도 좋고

꿈으로 무늬 짓는 少女(소녀)寢室(침실)이라도 좋다.

 

네가

下水道(하수도)에서 고민할 수 있다면

下水道(하수도)는 너의 고장

少女(소녀)의 가슴에서 꿈을 엮고 있다면

少女(소녀)의 가슴은 너의 樂園(낙원)

亞細亞(아세아)風土(풍토)를 노래할 수 있다면

亞細亞(아세아)는 너의 共和國(공화국)

人間(인간)領土(영토)를 넓히기 위하여

수 없이 갈라놓은 國境線(국경선)을 헐고

 

人間(인간)人間(인간)일 수 있는 것 以上(이상)으로

眞理(진리) 같은 것이 있으리라는 幻想(환상)

善惡(선악)規定(규정)짓는 利己主義的(이기주의적)倫理(윤리)

美醜(미추)定義(정의)하는 偏見的(편견적)獨斷(독단)

일체의 誤謬(오류)詩法(시법)으로 다스려라.

 

그리하여

너의 안에 높은 秩序(질서)를 마련하고

길이 죽지 않은 生命(생명)을 가꾸어라.

 

거기에 나를 살게 하라.

 

 

                   *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신조문화사, 1963)에서

     * 원시는 한자 표기만 되어 있는 것인데, 편집자가 괄호 속에 독음 처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