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영기 시조집 '갈무리하는 하루'의 시조(1)

김창집 2022. 5. 25. 00:09

 

차 한 잔의 사색

 

말 많아 거칠어진 입안도 행궈내고

 

우쭐대던 키도 낮춰 귀까지 씻었더니

 

다기에 어리는 얼굴 한 눈에 쏙 들더라

 

누구나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거

 

그 자리 이슬 받아 찻물을 얹었더니

 

다향을 먼저 맡고서 백목련이 벙글더라.

 

 

 

사랑의 불씨

 

-‘사랑이란 이세상의 모든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라지만

그 사랑, 제 그릇만큼 밖에는 담지 못하리

 

가슴속에 숨은 불씨 사랑을 퍼 올리면

다문화집 작은 불씨 꼬다케 피어나고

삼동의 칼바람조차 달동네 비켜간다

 

인력시장 모닥불 간힘 쓰며 타는 새벽

벌거숭이 나무의 다 내준 빈 가지에

뉘 생각 골몰히 젖은 반쪽 달이 걸려 있다

 

실체 없는 사랑에 안타까운 목마름

손난로 몰래 받아 해동을 꿈꾸는 밤

새터민, 빈 그릇 가득 고봉 눈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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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차용.

 

 

 

경칩 무렵

 

아침 가치 날아와서

님 오신다 기별할 때

 

길 떠난 그리움이

찻잎을 틔우는가

 

우전차

끓기도 전에

초인종 기척 소리.

 

 

 

기다림

 

찻물을 달일 때면

그리움도 끓습니다

 

기다림은 다향처럼

우러나며 새로워져

 

부딪는

다기소리에도

축복이 내립니다.

 

 

 

꽃비 속의 소야곡

 

어스름 벚꽃 길을

숨어보는 상현달

 

내 마음 언저리

손수건 흔들어서

스미며 되살아나는 분홍 꽃비 맞는다

 

노란 리본 맺어준

순애보 이야기도

하늘의 달 그리듯

아득해 보일세라

 

목 메인 소야곡으로 되살아나는 저녁

 

몇 번인지 알 수 없는

늘 새로운 올 사월에

묵혀서 숨겨뒀던

벚꽃의 서정들이

 

마른 밭 금간 자리를 짜깁기하고 있다.

 

 

 

도채비 꽃*

 

사랑하면

담도 커져

밀애하던

곳집 곁에

 

저건 필시

도채비가

달아놓은 지전일시

 

꽃상여

요령 대신에

고고지성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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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채비꽃 : 도채비는 도깨비. 산수국의 제주어.

 

 

                                    *김영기 시조집 갈무리하는 하루(나우, 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