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영기 시조집 '갈무리하는 하루'의 시조(2)

김창집 2022. 5. 31. 08:19

*각시붓꽃

 

 

오죽

 

공다공증 이순 남짓

연륜 모를 마디마디

 

바람만 채워 놓고

사위니 아름답다

 

장죽을 떨던

조부님 먹빛 환청.

 

 

 

인감을 새기며

 

매사에 신증하라, 특히 보증 서는 일에

행운의 신비 품은 벼락 친 대추목 골라

인주 빛 붉은 말씀을 인감에 새깁니다

 

오종종 대추 꽃도 복록을 꿈꿀까요

선업인지 악업인지 벼락 맞은 나무에서

죽어서 이름을 얻고 영생의 꽃 피우는 몸

 

막도장 막 굴러서 법 없이 산다더니

죽마고우 정 때문에 날벼락 파산 맞고

꺾어진 날개를 접어 동토의 길 가신 당신

 

저승에서 궁하시면 그 분도 함께 오소서

이번만은 기필코 대축 목 인감으로

앙다문 인감을 열어 보증 서 드릴게요.

 

 

 

조부님의 곶자왈

 

몰아치는 한파에

한 곳 지어 누웠다가

우우우 일어나며

쳐든 깃발 만세소리

그것은 머리띠 두른 농사꾼의 혼불이다

 

수탈에 이골이 난

강점기의 칼바람도

조부님의 화승불은

어쩌지 못했으리

깃발로 휘날리다가 불꽃으로 가신 생애

 

한라산 건너라

산굼부리도 도린 곁에

강설기 눈보라에

더 싱둥했단 얘기

 

상고대 꽃을 피우며 곶자왈을 지킨다.

 

 

 

조율시

 

한 뿌리 일가 이뤄 가족사를 쓰는 대추

둥근 세상 둥글게 살라자손 대대 둥글어서

종택의 가훈에 스며 가뭄에도 탱탱하다

 

조상의 초상 한 장 상속한 일이 없어

족보를 팽개치고 고욤으로 퇴화하랴

한 알의 까치밥조차 제 근본에 당당한 집

 

조율시 삼는 일로 생을 마친 영전에

삼대보고 썩는다는 생밤 고여 놓으니

봉함 속 푸른 유훈이 또르르 쏟아진다.

 

 

 

목화 단장

 

눈길 주지 않아도

피는 듯 지는 듯

오직 한 곬 꽃말의 전설을 꿈꾸는 꽃

무서리 내리기 전에

꽃구름 밭 만드나니

 

꽃이

대접받는 세상을

거꾸로 살면서

대를 잇는 몸부림으로 가족사를 엮는 꽃

여인의 매운 절개인가

뒷모습이 애틋해라

 

뉘 있어

묵정밭은 황홀히 출렁이나

세한에 더 그리운

무명치마 어머니 꽃

구휼의 넋으로 피네, 나라님도 풀지 못한…….

 

 

 

                                        *김영기 시조집 갈무리하는 하루(나우, 2010)에서

                                                          *사진 : 각시붓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