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죽
공다공증 이순 남짓
연륜 모를 마디마디
청靑 바람만 채워 놓고
사위니 아름답다
쟁
쟁
쟁
장죽을 떨던
조부님 먹빛 환청.
♧ 인감을 새기며
매사에 신증하라, 특히 보증 서는 일에
행운의 신비 품은 벼락 친 대추목 골라
인주 빛 붉은 말씀을 인감에 새깁니다
오종종 대추 꽃도 복록을 꿈꿀까요
선업인지 악업인지 벼락 맞은 나무에서
죽어서 이름을 얻고 영생의 꽃 피우는 몸
막도장 막 굴러서 법 없이 산다더니
죽마고우 정 때문에 날벼락 파산 맞고
꺾어진 날개를 접어 동토의 길 가신 당신
저승에서 궁하시면 그 분도 함께 오소서
이번만은 기필코 대축 목 인감으로
앙다문 인감을 열어 보증 서 드릴게요.
♧ 조부님의 곶자왈
몰아치는 한파에
한 곳 지어 누웠다가
우우우 일어나며
쳐든 깃발 만세소리
그것은 머리띠 두른 농사꾼의 혼불이다
수탈에 이골이 난
강점기의 칼바람도
조부님의 화승불은
어쩌지 못했으리
깃발로 휘날리다가 불꽃으로 가신 생애
한라산 건너라
산굼부리도 도린 곁에
강설기 눈보라에
더 싱둥했단 얘기
상고대 꽃을 피우며 곶자왈을 지킨다.
♧ 조율시
한 뿌리 일가 이뤄 가족사를 쓰는 대추
‘둥근 세상 둥글게 살라’ 자손 대대 둥글어서
종택의 가훈에 스며 가뭄에도 탱탱하다
조상의 초상 한 장 상속한 일이 없어
족보를 팽개치고 고욤으로 퇴화하랴
한 알의 까치밥조차 제 근본에 당당한 집
조율시 삼는 일로 생을 마친 영전에
삼대보고 썩는다는 생밤 고여 놓으니
봉함 속 푸른 유훈이 또르르 쏟아진다.
♧ 목화 단장
눈길 주지 않아도
피는 듯 지는 듯
오직 한 곬 꽃말의 전설을 꿈꾸는 꽃
무서리 내리기 전에
꽃구름 밭 만드나니
꽃이
대접받는 세상을
거꾸로 살면서
대를 잇는 몸부림으로 가족사를 엮는 꽃
여인의 매운 절개인가
뒷모습이 애틋해라
뉘 있어
묵정밭은 황홀히 출렁이나
세한에 더 그리운
무명치마 어머니 꽃
구휼의 넋으로 피네, 나라님도 풀지 못한…….
*김영기 시조집 『갈무리하는 하루』 (나우, 2010)에서
*사진 : 각시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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