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종호 시집 '날개'의 시(3)

김창집 2022. 5. 30. 00:02

*때죽나무 꽃

 

매미

 

사위는 계절에

생을 태우는

매미가 따갑게 잦아든다

 

네 삶에 대하여

너는 언제

목숨을 걸어본 적 있나

 

천지에

매미소리뿐

사위가 아득하다

 

 

 

하얀 종이

 

하얀 종이,

처음을 걸어가고 싶다

 

새벽 산은

처음을 향한 침묵의 사원

하늘 우러러

나무들은 수직의 신도

 

한 해가 저무는 길목

오랜 집착과 낡은 표정들 위로

산정의 새벽은

침례의 강으로 흐르고

 

하얀 종이,

처음을 걸어가고 싶다

 

 

 

문과 길과 숲

 

문이 없는 하늘에

구름이 펼치는 자유분방하고

자폐의 부엉이는 문을 닫고

밤이 되어도 날지 않네

 

무한 질주하는 차량과

오 분마다 뜨고 앉는 비행기들

잠시도 쉬어갈 수 없는 길에서

어디로들 가고 있을까

 

바람 부는 날이면 숲으로 가네

해도 달도 잘그락거리고

휘파람을 불면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걷노라면

손안 가득 만져지는 그리움

가지에 앉은 바람의 쓸쓸

길을 지우는 안개의 슬픔

 

숲이 가만히 말을 하네

바람 부는 대로 풀잎이 되라고

안개 낀 길에서는 눈을 감으라고

새소릴까, 물소릴까, 바람소리일까.

 

 

 

고등어

 

고등어 한 마리가 내게로 왔다

푸른 물결무늬를 번쩍이며

물찬 지느러미로 한 바다를 내달려와

이 아침 나의 밥상이 바다처럼 빛날 것이네

 

몸에 좋다는 등 푸른 생선

석쇠 위에 누워서 자글자글 익어갈 때

몸을 짜낸 기름이 뚝뚝 떨어져

피식피식 숯불을 끄려할 때

언제나 저 눈이 문제야,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

까마귀는 맨 먼저 눈을 빼 먹지

 

뻥 뚫려 멍한 눈

보이지 않으면

세상이 지워지고 죄가 지워지고

한 끼 식사가

자르르 기름이 돌겠지

 

뻥 뚫린 멍한 눈

슬픈 바다가 소리치는 이 아침

고등어가 눈을 감으니

또 다른 눈이 나를 바라보네

 

 

 

시계 소리

 

해는 중천에 멈추고

재깍재깍

무료한 한낮을

늘어져 잠을 자네

 

바다에 놀이 잦아들고

적 적 적 적

어느 무인도에

꽃잎이 지겠네

 

한 밤 블랙홀 속으로

덜컹덜컹

무쇠 캐터필러가

나를 뭉개고 가네

 

 

 

                                       *김종호 시집 날개(푸른사상, 2017)에서

                                            *사진 : 때죽나무 꽃(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