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의 동시(1)

김창집 2022. 6. 2. 00:14

 

낮달

 

낮달이 써레봉을 넘다가

중봉에 걸렸다

 

망태 장대 그냥 두어라

 

손 뻗으면 잡을 듯

재 너머 벽송사 가는 길목

 

깔깔대는

몇 안 되는 광점동 아이들 위해

 

오늘밤은, 쑥밭재로

꼬리별이나 듬뿍 떨어져라

오줌싸개들 발이 저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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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 함양군 마천면 추성동의 절.

*쑥밭재 : 대원사에서 벽송사로 넘는 고개.

*광점동 : 쑥밭재에서 벽송사 쪽 아랫동네.

 

 

 

돌부처

 

경주 남산 미륵골

천년千年을 앉아계시는

부처님 엉덩이 아래

개미들이 들락거립니다

 

엄숙하신 얼굴에도 간지러운지

미소를 지으십니다

 

 

 

무제치기 폭포

 

그리움엔 길이 없어

천길 벼랑 몸을 던집니다

 

나지막이 나지막이

그대라는 바다 가 닿고 싶어

 

 

 

그믐달 2

 

넘으려는 중봉마루 쉽지 않아

밤마다 제 살 도려낸 뒤

 

비워, 비우라며

비울 것 다 비운 길상사 도법스님 법문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

 

아침 산책길 숲 속 거미줄에

이슬이 걸려 있습니다

보는 이마다, 다들

눈부셔라, 눈부셔라 말하지만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잇감도 걸리지 않을

다 드러나 버린 거미줄

 

안개 낀 삶의 막막함에, 때로는

밥보다 시가 더 필요한 날도 있겠지만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을 낚으면

틀림없이 배가 고픕니다

   

 

                     * 권경업 시집 -어른을 위한 동시 1 하늘로 흐르는 강(작가마을, 200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