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事態(사태) Ⅱ
깊은 밤에
나의 故鄕(고향)에서는 사람이 죽고
캄캄한 거리에는 비바람도 치는가.
하늘은 風車(풍차)처럼 돌고
세상은 悲鳴(비명)같은 휘파람으로 찼는데
늙애달픈 古物商(고물상)이 하나
愛人(애인)의 손과
녹쓸은 匕首(비수)와
지난 날 빛나던 이름과
深奧(심오)하던 意味(의미)를……
수없는 生活(생활)의 屍體(시체)를 짊어진 채
絶望(절망)을 안고 쓰러졌다.
風波(풍파)와 戰爭(전쟁)에 시달린 孤島(고도)
……세상은
눌러 덮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自己(자기) 虐殺(학살)을 企圖(기도)하는
이 모든 事態(사태)를 태우기 위하여
時間(시간)은 온다!
♧ 獨白(독백)
밤이 내리자
집마다 門(문)이 닫혀진 都市(도시)
화물차 같은 감옥 한 간 방에
나의 家族(가족)들은 감금되어 있다.
무겁고 어두운
달도 별도 없는 天井(천정) 아래서
모두를 잃어버린
슬프고 애달픈 자리에 앉아
永遠(영원)을 悲願(비원)하는
외로운 靈魂(영혼)이여!
無量(무량)한 光陰(광음) 속에서
無邊(무변)의 孤獨(고독)에는 피가 흐르는데
피에 절은 손수건을
가슴 속에 구겨 담고
囚人(수인)처럼 꿇고 앉은 나에게는
끝내 다스리지 못할 불덩어리가 있다.
♧ 事情(사정)
즐거운 저녁식사가 한창인 무렵
전등불은 깜박 가버린 것이다.
삽시간에 벌어진 암흑의 영토에서
모든 영위는 멎어버리고
나의 권속들은
불안과 혼란 속에 묻혀 들어갔다.
서로의 위치와 서로의 눈짓
밥상 위의 분포도까지
먹구름에 쌓인 별자리처럼 캄캄했어도
세상을 한없이 어진 눈으로 보고
양초 한 자루 마련해 두지 않은 아내를
나는 꾸짖지 않는데
올 봄 들어 말을 시작한 어린놈은 있어
어둡다, 무섭다, 밥이 없다고 발악을 하며
당장에 불을 켜내라고 뒤볶는다.
電氣(전기)가 가버린 데는 딱한 事情(사정)이 있을 터인데도
이 어린 것 앞에 변명조차 못하고
덮어놓고 사정 사정 하는 비겁해진 이 애비에게
일체의 변명은 소용이 없다는 건지
어른의 이야기는 못 믿는다는 건지
암흑 속에서 <덩기(電氣) 덩기> 외치며
밥상 위의 질서를 마구 뒤집는다.
♧ 慶州號(경주호) 傳說(전설)
거칠고 캄캄한 밤바다 위에서
慶州號(경주호)는 方向(방향)을 잃었다.
北(북)을 向(향)하라는 사나운 意志(의지)와
南(남)을 向(향)하라는 굳센 意志(의지)가
무서운 비구름에 덮인 波濤(파도) 위에서
불을 뿜고 서로 對決(대결)하는 時間(시간)
南(남)을 등진 무리와
北(북)을 拒否(거부)하는 무리를 싣고
方向(방향)을 잃은 慶州號(경주호)는
星座(성좌)도 없는 하늘 아래서 제자리를 돌고
그것은 또 어느 겨레의 슬픈 宿命(숙명)처럼
南(남)을 버리고 北(북)을 못 간 무리는
暴風(폭풍)에 몰려 아득히 漂流(표류)하다가
왜놈의 고깃배에 잡혀 들었다.
♧ 빈자리에서
이제는 서로
다시 찾음 할 이도 없는
가난한 넋의 그림자야
네가 있음이 병이던 나는
너를 보내두고
차라리
도깨비 우는 黑夜(흑야)에
무덤 지키는 비석
먹구름 포기 포기마다
소리 없는 천둥이 울음하는데
蒼天(창천)에 끓던 太陽(태양)이
달과 별과 더불어 숨져버리면
비인 宇宙(우주)에는
그 무슨 色素(색소)라도 남을 것인가.
聖修女(성수녀) 꿇어 祈禱(기도)하는 모습과
고망술집에 하품하는 生理(생리)와
두 눈을 감고 忘却(망각)하는 死理(사리)와
아아
목숨의 實存(실존)이란
바람 가는 자리에 붙여 둔데도
바람이
돌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영혼이 없는 나의 그림자를
분풀이처럼 돌고 돌고 있으니
*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 (신조문화사, 1963)에서
* 원시는 한자 표기만 되어 있는데, 편집자가 괄호 속에 독음 처리했음.
![](https://blog.kakaocdn.net/dn/9ybQb/btrDPBoBr1h/HwsJSvlfCPke5P5lf0PbJ1/im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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