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

김창집 2022. 6. 4. 00:29

*철쭉

 

신 오우가五友歌 - 임 보

 

내 벗이 뭐냐 하면 휴대폰과 노트북

뜰 앞의 백모란과 노거송老巨松 한 그루

삼각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노라

 

천리 밖 지인들 목소리도 들려주고

그리운 사람들 얼굴도 담아 주고

궁금증 다 풀어주는 휴대폰이 상친구

 

종이 붓 없어도 손가락만 놀려대면

글도 써 주고 편지도 보내 주고

온종일 나를 위해서 시중드는 노트북

 

앞마당 취밭 곁엔 지천명의 백모란

5월초 한 이틀 하얀 꽃을 토하는데

그 손님맞이하려고 1년 내내 시중드네

 

대문 앞 터주 대감 백년 묵은 노거송

운수재 수문장으로 우람하게 서 있는데

집밖에 드나들 적마다 만지고 쓰다듬네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 삼각산아

지난밤 잘 잤느냐? 오늘 아침 어떠한가?

날마다 바라다보며 안부 묻고 끄덕이네

 

 

 

낙화 김석규

 

숨 가쁘던 한 시절의 오르막길

바람은 바람으로 더 낮게 불고

안개 속을 걸어가는 두 그림자

얼핏 스쳐 지나가는 뒷모습의

인간사 세상 속에 떠도는 아픔

소중한 인연도 견디는 게 없으니

돌아서서 가는 세월만 덧없어라

애틋하던 기약은 더욱 더 멀고

아프도록 눈부신 황홀한 사연

천지에 분분한 날 또 어쩌라고.

 

 

 

봄날에 정순영

 

따사로운 햇살에

겨울나무들이 수군거리더니

양지언덕과 들판이 엷은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고

 

꽃샘바람결에

손 시린 매화 가지마다 연붉은 꽃봉오리 터뜨리는 소리

봄 향기 퍼뜨리는 소리

 

죽음의 겨울을 떨치고

잃었던 생명이 움트는 생긋한 봄날에

 

화사한 하늘빛이 벅차

내가 죽으면

내가 죽어서 눈부신 영혼의 봄꽃으로 피어나면

 

 

 

사바나의 양식창고 - 김동호

 

사바나의 양식창고 크다

큰짐승들이 배설한 똥이

큰 양식창고가 되고 있다

 

태산만한 똥 덩어리를

쇠똥구리 딱정벌레

바퀴벌레들이

자전 공전 굴려 굴려

낮엔 해를 만들고

밤엔 달을 만들며 천혜의

밥통 잘 지켜가고 있다

 

 

 

진저리 무침 권순자

 

시장에서 톳을 샀다

 

톳을 따라 오래 전

어머니의 낡은 부엌으로 갔다

햇살 들이치는 구석 함지박에

곤피와 진저리가 바다를 끌어와 철썩였다

 

데쳐 초장에 버무리며

어머니의 시간도 버무렸다

 

입안에 톡톡 터지던 맛

동해의 봄 진저리나물은 부드러웠다

 

오늘

톳나물을 먹으며 그리움을 달랜다

 

한껏 솜씨 부려 보았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먹다가 가슴이 먹먹해져

목이 메인다

 

 

                       * 월간 우리20226월호(통권 408)에서

                                         * 사진 : 철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