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오우가五友歌 - 임 보
내 벗이 뭐냐 하면 휴대폰과 노트북
뜰 앞의 백모란과 노거송老巨松 한 그루
삼각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노라
천리 밖 지인들 목소리도 들려주고
그리운 사람들 얼굴도 담아 주고
궁금증 다 풀어주는 휴대폰이 상친구
종이 붓 없어도 손가락만 놀려대면
글도 써 주고 편지도 보내 주고
온종일 나를 위해서 시중드는 노트북
앞마당 취밭 곁엔 지천명의 백모란
5월초 한 이틀 하얀 꽃을 토하는데
그 손님맞이하려고 1년 내내 시중드네
대문 앞 터주 대감 백년 묵은 노거송
운수재 수문장으로 우람하게 서 있는데
집밖에 드나들 적마다 만지고 쓰다듬네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 삼각산아
지난밤 잘 잤느냐? 오늘 아침 어떠한가?
날마다 바라다보며 안부 묻고 끄덕이네
♧ 낙화 – 김석규
숨 가쁘던 한 시절의 오르막길
바람은 바람으로 더 낮게 불고
안개 속을 걸어가는 두 그림자
얼핏 스쳐 지나가는 뒷모습의
인간사 세상 속에 떠도는 아픔
소중한 인연도 견디는 게 없으니
돌아서서 가는 세월만 덧없어라
애틋하던 기약은 더욱 더 멀고
아프도록 눈부신 황홀한 사연
천지에 분분한 날 또 어쩌라고.
♧ 봄날에 – 정순영
따사로운 햇살에
겨울나무들이 수군거리더니
양지언덕과 들판이 엷은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고
꽃샘바람결에
손 시린 매화 가지마다 연붉은 꽃봉오리 터뜨리는 소리
봄 향기 퍼뜨리는 소리
죽음의 겨울을 떨치고
잃었던 생명이 움트는 생긋한 봄날에
화사한 하늘빛이 벅차
내가 죽으면
내가 죽어서 눈부신 영혼의 봄꽃으로 피어나면
♧ 사바나의 양식창고 - 김동호
사바나의 양식창고 크다
큰짐승들이 배설한 똥이
큰 양식창고가 되고 있다
태산만한 똥 덩어리를
쇠똥구리 딱정벌레
바퀴벌레들이
자전 공전 굴려 굴려
낮엔 해를 만들고
밤엔 달을 만들며 천혜의
밥통 잘 지켜가고 있다
♧ 진저리 무침 – 권순자
시장에서 톳을 샀다
톳을 따라 오래 전
어머니의 낡은 부엌으로 갔다
햇살 들이치는 구석 함지박에
곤피와 진저리가 바다를 끌어와 철썩였다
데쳐 초장에 버무리며
어머니의 시간도 버무렸다
입안에 톡톡 터지던 맛
동해의 봄 진저리나물은 부드러웠다
오늘
톳나물을 먹으며 그리움을 달랜다
한껏 솜씨 부려 보았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먹다가 가슴이 먹먹해져
목이 메인다
* 월간 『우리詩』 2022년 6월호(통권 408호)에서
* 사진 :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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