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외자들 – 김경훈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도
각명비에도
표석에도
4․3위령제 희생자 명단에도
없는
이름들
강규찬 고승옥 김계원 김대진
김두봉 김석환 김성규 김양근
김완배 김용관 김의봉 김주탁
이덕구 이승진 이종우 ……
다중의 희생자 보상 혜택 속에서도
비존재로의 암묵적 연장
다시 강요된 망각으로
제외되는 현실
이제 누가 소환하긴 하는가
자주독립 해방통일을!
♧ 별밭을 헤매는 사람들 – 김성주
저물녘
태극기 휘날리는 보국保國의 충혼탑 돌아
이승만이 만들어 줬다는 저수지 둑길을 걷는다
내 눈이 어승생 너머 눈 덮인 장구목을 더듬는데
아들놈은 하늘을 본다
아빠, 저 크고 반짝이는 별 이름이 뭐예요?
저건 별이 아니란다
잠시 반짝이는 위성이란다
얘야, 저 계곡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보이니?
에이 저건 눈 덮인 거잖아요
(내 눈에는 무자 기축년에 생긴 별들이 어른거리는데)
그래, 폭풍 설한 몰아칠 때 하늘로 올라 별이 된단다
명치끝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눈에서 물방울로 맺힌다
수면 위로 바람 지나고 물결 일렁인다
1894(동학년)의 보국안민輔國安民 깃발이
4․3 4․19 5․18 – 걸레 되었다
아빠, 아빠의 어린 시절보다
지금이 더 나은 세상인가요?
글쎄,
닦고 또 닦을 뿐
예나 지금이나 눈물을 머금은 사람들은
저 이름 없는 별 밭을 헤맨단다
♧ 거친오름 뫼제비꽃 - 김순남
언 땅을 깨고 일어서기 위해
풀들은 저마다의 심장을 두드리고
손을 뻗는 뿌리의 힘으로 꽃피는 줄을
천 갈래 만 갈래의 서리 박힌 살은
시린 이를 부딪치는
만삭의 대지를 씻으며
빌레왓 곶자왈을 짐승처럼 기어 나온 순애 씨!
당신을 공비라 하던가요
1956년 교래 어디서 잡혀온 다섯 사내들 틈에서
22살 앳된 처녀를 취조하던 한 경사!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 깊이에서
폭도와 경찰의 동거 살이 2년여,
그 인연의 살핌도 기특하여이다
봄이 오는 산빛처럼
내 연모의 땅 거친오름 아래
사월 바람도 몸을 풀고
뫼제비 분홍 꽃잎으로
다문다문 내려서는 줄을
♧ 비설飛雪 - 김승립
1949년 1월
눈보라 쏟아지는 봉개 들판
젊은 여인이 두 살배기 아기를 업고 달아나고 있다
등 뒤로 토벌대가 온 마을 불태우는 화염 하늘을 찌르고
거칠게 몰아쉬는 여인의 숨소리를 단말마의 총소리가 끊어놓는다
온통 쌀가루같이 하얀 눈밭에 피 흘리는 발자국 힘겹게 찍으면서
여인은 결국 사슴처럼 무릎을 꺾고 이미 식어버린 아기를 끌어안는다
가슴에 선혈이 낭자한데 울음조차 울지 못하는 아기를 두고
여인은 가만히 윙이자랑 윙이자랑 자장가를 불러주다 그만 앞으로 고꾸라진다
눈보라는 몰아치는데 그 위를 이불 덮듯 눈발이 하염없이 포개져 쌓인다
강산이 수없이 자리 바꾼 지금에도
눈보라가 몰아칠 때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데도 아기를 끌어안은 여인의 자장가가
핏빛 신음으로 들려오곤 한다
명부冥府의 흐느낌처럼
♧ 데칼코마니 Ⅱ - 김수열
1.
1949년 1월 3일
여수시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부역혐의자 125명은
만성리 깊은 계곡으로 끌려갔다 새벽이었다
5명씩 총살당한 후에 다시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져
5층으로 쌓은 시신 더미가 5개, 125명
층층 겹겹 쌓아올린 5층 탑 5개에 콜타르 부어 불을 태우고
행여 가족들이 찾을까 돌덩이 굴려 덮었고
살점 타는 냄새가 달포를 넘었다
남은 유족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고 형제묘라 하였다
2.
1950년 음력 칠월칠석날
모슬포 고구마창고에 임시 수용되었던 예비검속자 132명은
섯알오름 굴헝으로 끌려갔다. 새벽이었다
신사동산 지나 죽음을 예감하자 신발 던져 길을 내고
와다다와다다 총성이 새벽별처럼 쏟아져 내리고
허둥지둥 찾아온 유족들에겐 가까이 오면 빨갱이라 윽박지르고
멜젓 썩는 냄새에 눈 돌아간 마을 개들이 사람을 물어뜯고
머리통 하나에 남은 뼈 몇 개 대충 맞추어 봉분을 썼다
남은 유족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한 조상 모시듯이 지내자고 백조일손이라 하였다
*제주4.3 74주년 추념시집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제주작가회의 엮음, 한그루,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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