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장水葬 1950 - 김연미
할당된 공포를 싣고 트럭이 들어왔다
알몸의 포승줄이 똬리를 푼 산지항
목숨에 방점을 찍듯 돌덩이를 매달았다
삶의 기본 값에 눈물 값은 얼마인지
항구 너머 어둠 사이 갇혀 버린 울음 사이
짙어진 슬픔의 농도가 아래로만 가라앉고
그 많은 죽음에도 봉분 하나 없는 바다
뱃고동 소리마저 수장되던 그날 밤
파랗게 질린 하현이 몰래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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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음력 6월 20일경 예비 검속된 민간인들이 제주 앞바다에 집단 수장되었다.
♧ 성산포의 달 - 김영란
물때 따라 육지 길이
열렸다 닫히면
슬픈 언약처럼
달이 떠오르죠
터진목*
모래 언덕에
순비기꽃 피어나죠
이생의 종착역에
흩어지는 비명 하나
울음이 울음 물고
속절없이 떠돌죠
달빛이 파도에 젖어
흐느끼는
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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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때 제주도 성산읍 주민들이 군인 경찰에 끌려와 무참히 학살된 곳.
♧ 문상길의 기도 – 김칠선
제주민을 살리려
내가 죽겠습니다
붉은 섬
죽음의 파도가 밀려올 때
바위 치며 깨지던
하얀 물보라의 절규
스물두 살의 천사
돌려 막힌 조국
동포를 향한 초토화 진압작전
누구의 땅이던가?
미군정의 법정에서
하늘로 가던 문상길의 기도
제주민들을 살리려
내가 죽겠습니다
♧ 무장 해제 – 문상희
겨울 시골길 모퉁이에서
추운 아이들이 서둘러
돌아간 자리
어린 새들 모여 떨어진 빵 부스러기
나락처럼 쪼아먹는데 유독 진눈깨비가 내린다
아득하게 까무러쳐도
먹이는 빈약하고
진눈깨비는 유독 또 왜 내리는지
저 먼 나라도 역사는 반복되는지
독립은 이율배반이었다
막바지 소련이 내어놓은 우크라이나를
독선의 러시아가 장난감 다루듯
폭탄과 미사일로 무장 해제시키고 있다
어서 너는 오너라
평화여 화평이여
이제, 네가 오너라
♧ 애월涯月 - 나종영
서른 무렵 떠나간 사랑
달뜨는 애월에 남겨둔 사랑
파도치고 물새는 우는데
가슴 깊이 새겨진 뜨거운 꽃떨기여
산마루에 빛나던 한 줄기 불빛의 기억
눈보라 치는 바닷가 끝없이 걸어도
떠나간 시간은 만질 수 없네
세상은 굽이돌아 바위가 깎여 갔지만
샛바람에 날리는 붉은 꽃향기 잊을 수가 없네
새벽길 깨치고 서른에 떠나간 사람
어둠은 깊고 별빛이 서러워라
사랑은 물결에 흘러서 가고
동백꽃 달빛에 홀로 피었네
그대 없는 억새오름 하늘은 붉고
서른 살 청춘에 타오른 불꽃
노을 속에 펄럭이는 그대 하얀 옷자락이여
눈 덮인 산하 외로운 깃발이여
동트는 바다 너머 새벽은 오네
너무나 푸르러 검붉은 바다
백 년이 오고 백 년이 가도
순결한 서른의 사랑
가슴에 고이 묻어둔 애월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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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때 나이 서른도 채 못 되어 산화한 젊은 영혼들께 이 노래를 바칩니다.
* 제주4․3 74주년 추념시집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제주작가회의,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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