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 발간

김창집 2022. 6. 15. 00:05

 

 

시인의 말

 

또 한 권의 시집에다 길을 묻습니다

지나온 행간마다 근심만 쌓입니다

얼마나 닦고 닦아야

흐르는 물이 될까요

 

내 앞에 오는 모든 것, 작은 인연 아니지요

그 안에 살아야 하는 건 운명이라 하겠지요

시인이 뭐냐 물으면

도로 입을 닫습니다

 

부고도 없이 죽어간 어휘들을 찾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아 아픈 곳을 꿰맵니다

드러내

채찍을 맞더라도

기쁘게 내밉니다

 

 

                                2022년 오월에 한희정

 

 

 

목련꽃 편지

 

 

인편도 우편도 아닌, 홀연히 온 봄소식

늦잠결 초인종 소리, 눈 비비며 찾아온

앞마당

목련나무가

편지 한 장 들고서

 

바람결 사십 년 전 편지 한 통 따라 왔네

무심코 연 팔레트에 열두 색깔 꽃이 피듯

아버지

한 글자 한 글자

몽글몽글 꽃이었지

 

외로움이 깊을수록 꽃은 더욱 환했네

자취방 창호 문에 우련 비친 섬 하나

초승달

꽃 이파리에다

안부 묻던 그 봄밤

 

 

 

낮달맞이꽃

 

어쩌다가 백주대낮에 달맞이꽃 폈는가

 

적시를 못 찾아서 쪼그려 앉았는가

 

겸연쩍,

눈웃음치는 게

별 의미 없다는 듯

 

중심이 아니어도 힘이 되는 길은 있어

 

진심이면 통한다는 저 분홍 아웃사이더

 

늘 긍정,

스크럼 짜나 봐

한 마디씩 신났어

 

 

 

마늘밭 뻐꾹 소리

 

해풍에 젖고 마르는

알뜨르 마늘밭에

 

싹둑 잘라 마늘 대궁

햇볕 아래 누워 있네

 

줄줄이 사월의 현장,

뻐꾸기 울음 우네

 

견실했던 생애만큼 말수 없던 할머니,

뒷마당 조부님 묘 이장하던 그날처럼

목이 쉰 호곡소리가 환청인 듯 다가와

 

 

 

 

서운암 꽃 도반

 

1

내 눈 속 까만 눈부처 세고 또 셉니다

다시 또 세다가 그 장독서 놓쳤어요

놓아라,

부질없다는 듯

능소화 꽃 집니다

 

 

2

손가락 셈법으로 더하는 법만 배우다가

하나씩 아기범부채 빼는 법을 배우네요

비우면

통할까 몰라

들숨 먼저 마십니다

 

 

3

연못법당 초록방석 내려올 때 보입니다

가부좌 튼 어리연꽃 사미니 닮았네요

눈물 톡,

흩어진 구슬로

염주알을 뀁니다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