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종호 시집 '날개'의 시(5)

김창집 2022. 6. 16. 00:21

 

수선화 2

 

 

구름 낮은 들길에

은은한 허밍

 

, 수선화!

네 향기였구나

 

외로이

눈밭을 걸어서

 

호호 손을 부는 기다림에

바람보다 서둘러 왔구나.

 

 

 

가을 민들레

 

 

떠나야 한다고

소쩍새는

새벽까지 젖더니

 

무서리 내린 뜰

시멘트 완고한 틈새에

아침 햇살 환한 꽃

 

민들레야,

 

너 아니었다면

세상이 적막할 뻔하였다

 

나만큼

나로 사노라 했는데

그만 무너져 내린다

 

 

 

봄의 소리

 

남풍이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에

온 숲은 뜬소문에 수런거립니다

 

햇살이 종일 졸다 가면

그 밤, 별빛은 쏟아져 내리고

이 산 저 산에 꽃씨를 뿌리느라

자잘한 새소리가 왁자합니다

 

그 겨울은 길었습니다.

눈보라 사태 지고

세상에 믿음이 부질없다 할 때에도

그의 사랑을 굳게 믿었습니다

 

까르르 개나리의 노란 웃음소리에

노란 병아리들이 깨어나 삐악거리고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우르르 움이 돋는 연둣빛 노래와

, 팡 꽃이 피는 들녘에

봄꽃놀이로 귀가 먹먹합니다

 

세상이 온통 야단났는데

사랑한다!”

그의 음성이 낮고 부드럽습니다

 

 

 

가을엔

 

파란 물로 씻어서

하늘엔 청량한 음악이 흐릅니다

 

슬프고 괴로운 시간에

사랑은 모르게 익어갑니다

 

쓸쓸하지만

당신의 뜰에

햇살이 따뜻합니다

 

사랑합니다.’

말하세요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또 봄은 오고

 

또 봄은 오고

훌훌 겨울옷을 벗는 햇살과

비바리*는 머리에 꽃을 달고 한들거리고

여기저기서 건달들의 휘파람소리

온 산이 출렁출렁 홍수지겠다

 

산마루에 외따로이

나를 호명하지 않는 이름

낯선 거리를 기웃거리는 이방인

서로 부르며 날아가는

새들의 하늘로

한 점 구름을 띄운다

 

또 봄은 오고

실바람으로 오는 사람아,

갈수록 우람한 노송은

연신 노란 꽃가루를 흩뿌리고

더욱 외로운 하산길에

휘파람을 부는 작은 새여,

네가 참 고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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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 : 처녀. 제주어.

 

 

                                                * 김종호 시집 날개(푸른사상,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