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선화 2
구름 낮은 들길에
은은한 허밍
아, 수선화!
네 향기였구나
외로이
눈밭을 걸어서
호호 손을 부는 기다림에
바람보다 서둘러 왔구나.
♧ 가을 민들레
떠나야 한다고
소쩍새는
새벽까지 젖더니
무서리 내린 뜰
시멘트 완고한 틈새에
아침 햇살 환한 꽃
민들레야,
너 아니었다면
세상이 적막할 뻔하였다
나만큼
나로 사노라 했는데
그만 무너져 내린다
♧ 봄의 소리
남풍이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에
온 숲은 뜬소문에 수런거립니다
햇살이 종일 졸다 가면
그 밤, 별빛은 쏟아져 내리고
이 산 저 산에 꽃씨를 뿌리느라
자잘한 새소리가 왁자합니다
그 겨울은 길었습니다.
눈보라 사태 지고
세상에 믿음이 부질없다 할 때에도
그의 사랑을 굳게 믿었습니다
까르르 개나리의 노란 웃음소리에
노란 병아리들이 깨어나 삐악거리고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우르르 움이 돋는 연둣빛 노래와
팡, 팡 꽃이 피는 들녘에
봄꽃놀이로 귀가 먹먹합니다
세상이 온통 야단났는데
“사랑한다!”
그의 음성이 낮고 부드럽습니다
♧ 가을엔
파란 물로 씻어서
하늘엔 청량한 음악이 흐릅니다
슬프고 괴로운 시간에
사랑은 모르게 익어갑니다
쓸쓸하지만
당신의 뜰에
햇살이 따뜻합니다
‘사랑합니다.’
말하세요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또 봄은 오고
또 봄은 오고
훌훌 겨울옷을 벗는 햇살과
비바리*는 머리에 꽃을 달고 한들거리고
여기저기서 건달들의 휘파람소리
온 산이 출렁출렁 홍수지겠다
산마루에 외따로이
나를 호명하지 않는 이름
낯선 거리를 기웃거리는 이방인
서로 부르며 날아가는
새들의 하늘로
한 점 구름을 띄운다
또 봄은 오고
실바람으로 오는 사람아,
갈수록 우람한 노송은
연신 노란 꽃가루를 흩뿌리고
더욱 외로운 하산길에
휘파람을 부는 작은 새여,
네가 참 고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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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 : 처녀. 제주어.
* 김종호 시집 『날개』 (푸른사상,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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