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의 동시(2)

김창집 2022. 6. 12. 00:05

*큰앵초

 

그리움이란

 

어느 마음 한 장, 꼬깃꼬깃

가슴 속 갈피에 품었다가

지치고 바람 부는 일상의 골목 끝

돌아앉아 가만히 꺼내보는 것입니다

 

접힌 모서리 닳고 닳고 헤지도록

 

 

 

어느 새벽, 또 맨발로

    -아내에게

 

기를 쓰고 달려갑니다, 돌아보면

지나쳐 있는 것 세월뿐인 삶

 

언제부턴가, 눈가에 잔주름 하나 둘

나이테처럼 늘어나, 누가 보더라도

중년 티 감출 수 없는 이 여인이

다시 그 길 끝에 서 있다면

나는 또 맨발 부르트며 갈 수밖에요

 

사와 랑 사이로 난 자갈밭 외길을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뒤뜰에 초롱꽃 낮 등불은 꺼지고

 

추녀 끝에서, , ,

하늘이 땅에게 노크를 하면

 

삼소굴* 댓돌 틈으로

여름풀 쇠비름이 빗장을 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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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소굴 : 양산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선사가 생전에 계시던 곳.

 

 

 

꽃 지는 소리

 

윤중로 벚꽃 여린 꽃잎들

포르르, 포르르 라니

 

웃기지 마세요

속절없이 또 4월을 여의는

중년의 마른, 가슴 철렁

천근千斤의 무게로 올리는

저 소리를

 

 

 

무지개

 

천사의 눈썹입니다

 

흐르는 갈물이었는지

함박꽃 무늬 하얀

아후강* 뜨개질 탁자보 위의 어항이었는지 아련하지만

여우비에 젖어, 촉촉이

물 안을 들여다보면 곱고 선한 눈매가 있었습니다

 

비를 맞지 않는 물고기의 눈으로 바라본, 그 대

사랑하게 된 물 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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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후강 : 코바늘 뜨개질의 종류. 아프간(afghan)의 일본식 발음.

 

 

 

                           *권경업 시집  어른을 위한 동시 하늘로 흐르는 강(작가마을, 2008)에서

                                                                       *사진 : 큰앵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