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움이란
어느 마음 한 장, 꼬깃꼬깃
가슴 속 갈피에 품었다가
지치고 바람 부는 일상의 골목 끝
돌아앉아 가만히 꺼내보는 것입니다
접힌 모서리 닳고 닳고 헤지도록
♧ 어느 새벽, 또 맨발로
-아내에게
기를 쓰고 달려갑니다, 돌아보면
지나쳐 있는 것 세월뿐인 삶
언제부턴가, 눈가에 잔주름 하나 둘
나이테처럼 늘어나, 누가 보더라도
중년 티 감출 수 없는 이 여인이
다시 그 길 끝에 서 있다면
나는 또 맨발 부르트며 갈 수밖에요
사와 랑 사이로 난 자갈밭 외길을
♧ 비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뒤뜰에 초롱꽃 낮 등불은 꺼지고
추녀 끝에서, 똑, 똑, 똑
하늘이 땅에게 노크를 하면
삼소굴* 댓돌 틈으로
여름풀 쇠비름이 빗장을 풉니다
---
*삼소굴 : 양산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선사가 생전에 계시던 곳.
♧ 꽃 지는 소리
윤중로 벚꽃 여린 꽃잎들
포르르, 포르르 라니
웃기지 마세요
속절없이 또 4월을 여의는
중년의 마른, 가슴 철렁
천근千斤의 무게로 올리는
저 소리를
♧ 무지개
천사의 눈썹입니다
흐르는 갈물이었는지
함박꽃 무늬 하얀
아후강* 뜨개질 탁자보 위의 어항이었는지 아련하지만
여우비에 젖어, 촉촉이
물 안을 들여다보면 곱고 선한 눈매가 있었습니다
비를 맞지 않는 물고기의 눈으로 바라본, 그 대
사랑하게 된 물 밖의.
---
*아후강 : 코바늘 뜨개질의 종류. 아프간(afghan)의 일본식 발음.
*권경업 시집 –어른을 위한 동시 『하늘로 흐르는 강』 (작가마을, 2008)에서
*사진 : 큰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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