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의 시(2)

김창집 2022. 11. 7. 01:16

 

섬을 떠난 사람들은

 

 

섬을 떠난 사람들은

파도 소리에도

옷이 젖는다

 

일상의 먼지를 털고

저물어가는 창을 열면

 

집어등集魚燈

타는 불빛을

쫓아가는 멸치떼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

 

 

섬에 있어도

눈 감으면

이리 환히 보이는 걸

내 젊은 날 왜 그렇게

떠나야만 보였을까

이맘쯤

사려니숲엔

복수초 노랗겠다

 

눈 밝혀 보려하니

섬은 떠나야 보이는가

푸른 파도 앞에서도

이게 섬인 걸 몰랐었다

이맘쯤

한림 앞 바다

자리 팔짝 뛰겠구나

 

교래 숲 가운데 서도

숲과 나무 다 보이는 걸

나무만 보고 있다고

어리석다 하잖아요

눈 감고

새 소리 들으면

영실 단풍이 활활 타네요

 

정류헌에 노루 왔으니

산록도로 눈 쌓였겠다

새 소리 외로우면

그토록 혼자 울면

와락 와

안기는 섬들

우린 모두 섬이었구나

 

 

 

파도

 

 

부서질 줄 아는 사람

외로운 섬

파도 됩니다

바다, 그 아무리 넓어도

발끝까지 어루만져

그리움

보석처럼 빛나

별로 뜨는

섬 하나

섬 둘

 

 

 

포구浦口

 

 

1

 

빈 배 머문 포구에는

노을 베고 누운 하루

사공이 남긴 외길

밀물이 먹어들면

개펄에

닻 부려놓고

섬을 향해 눈 감는 배

 

2

 

비바리 갈옷 적삼

뉘 볼라 설익은 속살

등에 밴 소금길랑

그냥 지고 가더라도

남겨둔

유자 꽃망울

밤새 살몃 피었다

 

3

 

배 떠난 삶의 둘레

마파람만 서성이고

솔잎에 찔린 낮달

시름시름 앓던 그날도

섬 기슭

어욱밭에는

들꿩 알을 품는다

 

 

 

성산 일출봉

 

 

섬에서 태어나서

섬이어야 하는 운명의 고리

이제는 끊어야지

돌아보지도 말아야지

박차고 하늘로 솟는

발부리를 잡았다

 

그래, 섬이 아니다

웅장한 바위산이다

붙잡은 가녀린 손

차마 떨치지 못해

쌓이고 맺힌 응어리

토해내는 붉은 해

 

파도에 씻겨가는

전설이 차라리 곱다

참아서 패인 가슴

베풀어 다 채우고

한 가닥 미련까지 버려

절로 높은 일출봉

 

성산포 솟는 해는

누가 보아도 하나인데

버거운 삶 지고 오른

간절한 소망들이

하나씩 나누어 갖고

덩그라니 남은 하나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한 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