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용수리 당산봉 트레일(2)

김창집 2022. 12. 6. 02:11

*숭모비

 

 

제주목사 임형수 숭모비

 

  당산봉 능선을 따라 가다 아래로 난 계단으로 내린다. 전부터 당산봉을 오르는 길의 표적이 돼왔던 급수탱크가 듬직하게 서 있다. 거기서 안으로 들어가니, 알오름 초입에 웅장하게 늘어선 석물이 보인다. 제주목사를 지낸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숭모비(崇慕碑).

 

  임형수 목사는 명종 때인 1545년 을사사화와 연루되어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파직, 결국 사사된 인물이다. 짧은 일생(15141547)이지만 그의 대범함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제주목사로 재직 중 치정(治政)이 엄격 공정하여 세상 사람들이 명환(名宦)이라 칭하더니, 파직되자 모두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곳은 그의 아들인 정산현감 임구(林枸)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평택임씨 제주 입도조 선영이다. 숭모비는 임형수 목사 탄생 5백주년 기념으로 2014년에 세운 것이다.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등과 친교를 맺을 정도로 문장에 뛰어나 시문(詩文)을 많이 남겼는데, 주변에 도제해(渡濟海)’, ‘용두암(龍頭岩)’ 같은 시비(詩碑)도 세웠다.

 

 

*당산봉 알오름

 

당산봉알오름

 

  평택임씨 입도조 묘역에서 알오름 오른쪽 옆으로 길이 나 있어 우거진 나무 사이를 걷는데, 옛날 산골에 있던 길을 연상시킨다. 천선과나무나 예덕나무 같은 나무를 의지해서 칡넝쿨과 찔레덩굴, 으아리, 으름덩굴, 계요등이 눈에 띈다.

 

  ‘알오름은 본 오름 아래쪽이나 분화구에 작고 둥그스름하게 솟아오른 봉오리가 대부분으로 오름이 낳은 알을 연상시키면서 새끼처럼 보여 붙인 이름이다. 여기 당산봉알오름처럼 전체 오름 368개에 속하는 것 중 분화구 안에 위치한 것으로는 두산봉알오름이 있다.

 

*생이기정

 

  또 형태나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는 것도 아니다. 좌보미에는 봉우리가 많지만 동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것에 좌보미알오름이란 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제주시 사라봉과 별도봉 사이에 있는 것은 그냥 알오름이라고 하는 등 이 같은 이름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생이기정을 따라

 

  알오름을 지나고 나면, 주변이 모두 경작지여서 농로로 이어진다. 나가다가 바닷가로 난 도랑 같은 시내를 따라 가면, 다시 올레 12코스와 만난다. 이어지는 오름의 외륜(外輪)은 겨울 하늬바람이 몰고 오는 파도에 오랜 세월 노출되어 무른 속살이 깎이면서 절벽을 이루었다.

 

  ‘기정’ ‘낭떠러지’의 제주어다. 따라서 ‘생이기정’ ‘새가 사는 절벽’이다. 12코스 안내표지에는 ‘겨울철새의 낙원으로 가마우지, 재갈매기, 갈매기 등이 떼 지어 산다.’고 했다. 배를 타고 나가서 바라보면 새의 분비물로 하얗게 변한 곳이 많다고 한다.

 

*바다가마우지

 

  어찌 새들 뿐이랴. 한 번은 이곳을 지나가다 남방큰돌고래 떼를 만난 적이 있다. 옛날 같으면 흔하게 보던 풍경인데, 어른이 되어서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 몸을 말리다 돌고래 떼를 만나면 물알로! 물알로!’하며 물 아래로 잠수하라고 외치던 그때가 그립다. 요즘 심심치 않게 사체(死體)로 발견되는 상괭이의 보도를 보면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가마우지하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고기잡이에 사용하는 민물가마우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바다에 사는 가마우지도 많다. 해변을 거닐다 보면 바위 위에서 날개 말리는 검은 새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날개에 기름기가 적어 바다 속에서 고기를 잡다보면 쉽게 젖기 때문이라 한다. 서로 햇볕을 차지하려고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은 모습이 흥미롭다.

 

*당산봉수 터가 있는 곳(안테나)

 

당산봉수 터

 

  생이기정에서 외륜이 끝나는 곳 봉긋하게 도드라진 곳이 당산봉수 터다. ‘봉수(烽燧)’라면 조선시대 통신제도의 하나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올려 적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을 하던 곳이다. 고려시대부터 이런 제도를 실시했다 하나 조선시대에 와서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원년(1419) 5월에 무사(無事) 1()로부터 적과 접전 때 5()에 이르는 거화법(擧火法)과 관계요원의 근무부실에 대한 과죄규정(科罪規定) 등을 정하였다.’고 나와 있다. 제주에서는 대부분 해안에 가까이 있는 오름 정상부나 신호를 주고받을 다른 봉수가 잘 보이는 곳에 설치했고, 섬을 돌며 25봉수가 있었다.

 

  제주에서의 봉수는 별다른 시설은 하지 않고, 가운데 봉덕을 중심으로 주변에 동그랗게 23차례 방화선을 구축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지금의 당산봉수 터는 별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대신 경비초소가 들어섰다. 이 당산봉수는 차귀진 소속으로 6명의 별장(別將)12명의 봉군(烽軍)이 배치되어 있으면서 동으로 모슬봉수, 서로는 만조봉수와 교신했다.

 

*차귀당

 

차귀당을 들르다

 

  정해진 코스를 다 돌아본 후 차귀당엘 들렸다. 왜냐 하면 이 당()이 오름 기슭에 들어서면서 당산봉이란 이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귀당 자리에는 고산1리 본향당인 속칭 당목잇당이 들어섰다. 새로 꾸민 당은 당오름 남쪽 일주도로에 면한 밭에 있다. 벽은 현무암을 잘 다듬어 쌓고 기와를 올렸는데, 내부는 시멘트로 제단 부분를 조금 높이고, 나무로 딱 맞게 제상(祭床)을 만들어 그 위에 배치했다. 그리고 좌우벽 조금 위쪽으로 줄을 쳐서 지전물색을 걸고, 바닥엔 비닐장판을 깔았다.

 

  당의 본풀이에 따르면, 법성이라는 목동(牧童)이 바다에서 주워온 상자에 뱀이 있어 이를 당신(堂神)할망으로 모셨다고 한다. 일설에 차귀당은 제주시 광양당, 안덕면 덕수리 광정당(廣靜堂)과 함께 3대 국당(國堂)이라 할 만큼 대단한 신당이었다. 광양당이 한라산 수호신을 모시는 당이었다면, 이곳은 뱀의 신인 사신(蛇神)을 모시는 당으로 당시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계속>

 

*오솔길

* 이 글은 뉴제주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필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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