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외도동 탐방로 ‘외도물길 20리’(2)

김창집 2022. 12. 27. 00:39

*명아주

 

보리밭 길은 콩밭 길로 변해

 

  해안도로에서 바로 내도 보리밭 길로 통하는 곳은 지금 건축 중이다. 때문에 도로가 어질러져 있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길목을 놓치기 쉽다. 그곳을 지나야 중요한 지점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작은 돌하르방을 만나 쉽게 진입한다.  정작 내도 보리밭길로 소개된 길은 계절이 계절이니만치 진작 보리를 벤 뒤 대부분 콩을 심어놓아 일찍 씨를 뿌린 것은 얼마 없어 콩잎을 따 먹을 정도로 자랐다. 보리 대신 기장을 심은 밭 중 한 곳은 이미 베었고, 한 곳은 시원치 않은지 아직 그대로다.

 

  길섶엔 옛 시골길에서 보이던 식물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밭 구석에 커다란 명아주들이 눈에 띈다. 이 풀은 제주어로 제낭또는 제쿨이라 하는데, 한해살이풀이지만 잘 키우고 말려 지팡이를 만들면 청려장(靑藜杖)’이라 하여 장수지팡이로 쓴다 본초강목에는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글이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부모님이 50살이 되면 아들이 이 줄기로 효도지팡이를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했다.

 

 

 

도근천 산책로

 

  인도를 통해 길을 건너 남쪽으로 나 있는 신산마을길로 들어서면 얼마 안 가 오른쪽으로 도근천산책로가 나타난다. 남서쪽 도근천으로 이어진 길이다. 인가에서 조성한 꽃길엔 마침 칸나와 분꽃이 피어 길손을 반긴다. 여기 분꽃은 제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색이 아니어서 한참 동안 주저앉아 살폈으나, 밤에 피는 꽃이어서 활짝 핀 것이 없어 아쉽다.

 

  내를 만나 서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면 도근교와 만난다. 도근천(都近川)은 족은드레와 아흔아홉골에서 발원, 선녀폭포로 내려 해안 축산단지, 누운오름, 월산, 도평을 거쳐 도근교에서 어시천과 합류한 뒤 바다로 가기 직전 광령천과 합친다.

도근교를 지나니 길옆에 산책로를 만들고 소나무와 벚나무, 그리고 보리밥나무를 심은 다음, 가운데 팽나무를 드문드문 섞었다. 20리 물길은 그곳에서 도근천을 지나 어시천 산책로로 이어지도록 했는데, 하천이 범람할 때는 우회하도록 했다.

 

 

어시천 산책로

 

  하천은 이미 어시천과 합류한 상태인데, 어시천은 해안목장 부근에서 발원하여 밝은오름 서쪽을 지나 해안초등학교 옆을 지나면서 동쪽 작은 골쇠천과 합친 뒤 애조로를 거친다. 그리고 도평마을에 이르기 전 광령천 한 자락과 이어지고 도평마을을 지난 뒤 이곳에서 도근천과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도근천 산책로에서 어시천 산책로로 잇는 구간을 하필 이곳 하천을 통해 연결해 놓아 불편하다. 20149월 중순에 완공했다는 어시천 정비사업은 물이 다른 곳으로 넘쳐나지 않도록 울타리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진행했다는데, 토사가 흘러 어지럽고 악취가 풍긴다. 바닥을 골랐는지 요철이 심하지 않은 곳은 갈대가 무성하여 내가 범람하지 않을 때는 찌꺼기가 쌓여 쉽게 물이 썩겠다. 공사 설계 시 많은 배려가 요구된다. 어시천 산책로는 내도교를 지나 외도천과 만나면서 끝나도록 설계되었다. 목책을 두르고 곳곳에 새로운 형태의 휴게소를 만들어 쉬어가도록 힘썼다.

 

 

외도 생태공원

 

  외도천과 만나면서 나무가 보였는데, 마침 자귀나무가 꽃을 피워 하늘하늘 손짓하는 것 같다. 전에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쌓았던 돌턱 위쪽으로 넓은 징검다리 형태의 길을 만들어 놓아 그곳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생태공원을 조성한 곳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없는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안전요원인 듯싶은 사람이 지켜보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생태공원에는 시가 있는 산책로를 조성했는데, 이곳 외도동에 사는 신승행 시인의 월대송(月臺頌)’이 맨 앞에서 눈길을 끈다.

 

  ‘나앉은 수평선 관탈섬도 쉼이 없는/ 쫓거니 쫓기거니 밀물들물 흥을 치면/ 관탈도/ 옷고름 풀며/ 외도다리 넘보는데// 천년을 지났어도 물색은 천년만년/ 달빛 업은 은어 뗴도 천명이라 부산하다/ 고망물/ 강을 거슬러/ 다리난간 넘나든다.// 달빛이 한가롭다 옛 풍월 어디메인가!/ 팽나무 고송 숨골에 수심 여는 저 나그네/ 한잔 술/ 심은 둔덕에/ 월대 밤은 깊어만 가네.’ -신승행 월대송전문.

 

 

 

  지나가면서 살펴본즉 버드나무도 있고 나이 든 팽나무가 많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팽나무에 병충해가 없이 짙푸르고 열매도 노랗게 익어 제법 먹을거리가 되었는데, 요즘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 나무들까지 잎이 병충해로 상해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부러 찾은 상수원 보호구역

 

  길은 외도운동장에서 돌도록 되어 있지만 안내판에 노란 선으로 덧붙인 곳이 있어 가 보았다. 곳곳에 박혀 있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표주(標柱)에 비해 좁은 시멘트 길 바닥에 사유지라 쓴 것 외에 별 시설은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갔을 때 물에서 한가히 놀던 커다란 새떼들이 놀라 후다닥 가시덤불 속으로 숨는다. 멀고 순간적이라 자세히는 못 보았으나 청둥오리 같았다. 에미는 오른쪽으로 재빨리 날아오르고 새끼들은 왼쪽으로 줄줄이 숨는다. 몸은 성체에 가까운데 아직은 날지 못하는 것 같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용암이 흐르면서 이루어진 암석 바닥과 양쪽으로 늘어선 견고한 절벽은 물을 간직하기 좋은 조건을 지녔다. 게다가 아무런 시설도 없이 자연스레 자라도록 내버린 울창한 나무들이 물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나무는 팽나무를 주종으로 종가시나무, 소나무, 멀구슬나무, 느릅나무, 자귀나무 등이고 가시덤불 위에는 칡이 왕성하게 줄기를 뻗어 꽃을 피웠다. 하여 제대로 된 상수원보호구역을 보았다는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계속>

 

  *이 글은 '뉴제주일보' 2021년 7월 19일자에 실었던 내용으로 그림과 글이 시기와 잘 안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