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고산리 차귀도 트레일(2)

김창집 2022. 12. 16. 01:32

 

 

제법 넓은 섬

 

 

   집터를 넘어서자 눈앞에 넓은 풀밭이 펼쳐진다. 제주본섬에 딸린 유인(有人島) 즉 우도, 가파도, 비양도, 마라도 다음으로 크고 또 한때 사람도 살았던 섬이다. 먹을 것도 없고 농사지을 땅도 부족하던 때, 점심만 주면 김을 매어주던 시절이었다. 이 정도 땅이면 얼마든지 개간해 농사지을 수 있었겠지.

 

  등대가 서 있는 언덕까지는 억새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아직도 지기 싫은 듯 늦가을 해풍(海風)에 더욱 보랏빛이 짙어진 갯쑥부쟁이가 발을 걸며 아는 채를 한다.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려면 주어진 1시간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다 생각하며 속도를 높인다. 이 땅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었다는데, 그게 언제적 이야기였는지 지금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제쯤이면 이 들판에서 고구마를 거둬들이며 땔감들을 주워 모아 피워대는 연기로 이 들판을 채웠겠지. 본섬의 엉알길을 지나는 올레꾼들이 섬에서 가물거리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등대

 

차귀도의 등대

 

   주어진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일까? 올라오기 전 잠시 본 해설판에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등대를 만들 때 돌과 자재를 나르며 숨이 가빠 볼락볼락했다는 데서 볼래기 동산이라 했다는 걸 생각하니 미소가 저절로 피어난다. 195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무인등대, 하얗게 칠한 페인트가 오후의 해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섬이지만 우주로는 무한히 열린 곳이다. 멀리 지나가면서 보면 작고 아련하게 보이겠지만 파도치는 곳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내세워 억겁의 세월을 지켜낸 섬이다. 응원군처럼 보이는 한라산도 믿을 게 못 된다. 애정 어린 눈으로 걱정하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존재이기에, 차라리 머리 위로 보이는 우주의 별과 소통하는 꿈을 꾸리라.

 

  숨을 고르면서 중국 쪽을 응시해 본다. 수평선 너머에 분명히 쌍하이가 존재하겠지만 보이지 않으니 허사다. 30년쯤 되었을까?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끝 성산두(成山頭)에 올랐는데, 가이드가 말하길 고요한 날이면 우리나라의 장산곶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반신반의 했던 일이 떠오른다. 남서쪽으로 곧장 가다보면 곧 이어도 기지는 나타나겠지.

 

 

*해녀콩

 

사연이 많은 해녀콩

 

  그래도 억새와 띠 사이에 나 있는 찔레나무나 돌가시나무, 순비기나무와 보리밥나무들을 헤치며 나오는데, 눈에 익은 강낭콩 꼬투리 같은 것이 눈에 띈다. 꽃이 피었을 때는 애처로운 분홍색이었던 게 꽤 실하게 여물었다. 제주의 섬이나 해안의 돌 틈에서 여름날 무리지어 자라는데, 해녀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원치 않고 들어선 아이를 지우려고 한줌씩 먹었다는 해녀콩.

 

  ‘낙태한 아이를 버린 분홍빛 고쟁이같이// 소로도 못 나면 여자로 나는 거라고 하늘에 해 박은 날이면 칠성판 등에 지고 제 생을 자맥질하듯 저승까지 넘나들던, 어미 팔자 대물림 딸에게 이어질까 몸 풀고 사흘 만에 속죄하듯 물질 가던,// 어머니 애간장 녹아 전설처럼 피어난 꽃’ -김영란 시조 해녀콩 꽃모두.

 

*시리여, 장군바위 등이 있어 지질을 탐구할 수 있는 곳

 

차귀도의 지질(地質)

 

  요즘 들어 차귀도는 수월봉과 연계된 하나의 응회환이 아니었겠느냐는 조심스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섬에서 가만히 살피면 2개의 작은 응회구와 여러 개의 분석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처음 응회구가 생겨나고, 그 내부에서 분석구가 형성된 걸로 보고 있다. 서쪽에도 다시 다른 응회구와 분석구가 만들어지고 용암이 분출 되었다는데.

 

  간빙기를 거치면서 수면이 높낮이가 쉽게 변하는데, 여러 차례 폭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물을 만났을 때의 응회환과 그냥 육지일 때 작은 분화를 거치면서 분석구가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그래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파도가 거칠어지면서 섬이 깎이어 바다 속으로 흩어져버린 것이다.

 

  식생을 살펴보니, 당산봉이나 수월봉 해안과 비슷하다. 썩은여, 장군바위 들이 있는 곳을 돌아나오면서 살핀 식물로는 갯까치수영, 갯무, 번행초, 갯메꽃, 갯완두 그리고 방풍나물로 먹는 갯기름나물도 보인다. 그리고 곳곳에 조릿대를 닮은 이대가 많이 퍼져 있다. 그래서 죽도(竹島)라고 하나 보다.

 

 

* 여 위의 강태공들

 

돌아 나오면서

 

  돌아오는 길은 약 20분 동안 배로 섬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멀리서 모양만 살피던 매바위는 보기와 다르게 제법 크다. 그리고 납작한 여[]들 위에는 낚시꾼들이 몰려가 열심히 낚시를 하고 있었다. 작은 여를 포함하면 딸린 게 한두 곳이 아니다.

 

  차귀도는 제주해역에서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해역으로 아열대성이 강하며, 510m 수심에는 기는비단잘록이 같은 미기록종 해조류가 자란다. 동물의 경우 해면동물 13종 중 3종이 미기록종이고, 극피동물은 6종 중 1, 자포동물은 총 15종 중에 산호충류 2종 등 우리나라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

 

                           * 이글은 뉴제주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필자의 '길 이야기'입니다.

 

 

*파도와 바람에 무너져버린 부분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