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외도동 ‘외도 물길 20리’(1)

김창집 2022. 12. 21. 00:19

*물 맑은 월대천

 

2회 월대천 축제 때 개장

 

 

   광령천, 그리고 도근천과 어시천이 만나 바닷가에 이르기 전 마지막 한 줄기로 합쳐 절경을 이루는 곳. 주민들은 이곳을 명승 월대를 내세워 월대천(月臺川)’, 또는 외도천(外都川)’이라 부른다. 그렇게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월대천은 바다와 한라산 계곡물이 만나는 곳으로 건천(乾川)이 대부분인 제주에서 몇 안 되는 상시천(常時川)이다.

 

   이렇게 좋은 물이 있기에 주민들은 팽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 등을 줄줄이 심어 그늘을 만들고 은어를 불러들여 유원지로 가꾸었다. 이에 시인 묵객들이 모여들어 월대(月臺)’라 이름하고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겼다. 육지에서 부임한 관리들 중 누대(樓臺)에서 즐기는데 익숙한 이들이 성안에서 말을 타고 나들이하기에 딱 알맞은 거리가 아니던가?

 

  마을에서는 20149월 두 번째 월대천 축제를 벌이면서 월대를 축으로 바닷가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탐방로를 개설했다. 월대에서 출발하여 알작지 내도 보리밭길 도근천 산책로 어시천 산책로 외도 운동장 벽화거리 연대 마이못 연대월대 해안산책로를 통하여 월대로 다시 돌아오는 약 7km의 길로 2시간 거리다.

 

 

*월대

 

월대(月臺), 숲 사이로 뜨는 달

 

 

  마을 사람들은 이곳 월대(月臺)’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숲 사이로 떠오른 달이 맑은 물가에 비춰 그림자를 드리운 장관을 즐기던 누대(樓臺)’라고 한다. 비록 팔각정이나 누각 같은 건축물은 없으나, 현무암을 다듬어 운치 있게 쌓아올린 좌단과 그에 어울리게 새겨 놓은 표석의 기울어진 자가 한층 더 멋스럽고, 단 옆에 길게 뻗은 노송이 운치를 더해준다.

 

  젊은 시절, 선인들의 느꼈던 정서를 맛보려고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몰려와 은어회를 즐기며 시낭송 모임을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마침 이곳을 취재하던 날은 하천 정비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번 지방하천 정비공사는 태풍 및 게릴라성 집중호우 등에 의한 홍수예방 사업을 통하여 주택 및 농장, 농경지 침수 등 자연재해를 예방함으로써 주민의 고귀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더불어 하천의 환경 기능을 회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어떻든 옛 모습을 잃지 않게 잘 정비되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아니라 어떤 자연재해에도 흔들림 없는 명승지의 품격까지 살렸으면 좋겠다.

 

*다리를 지난 곳에 세워진 물허벅 여인상

 

다리를 지나며

 

 

   외도다리 쪽으로 내려가는 곳에 마을 소개와 함께 물길 20안내판을 설치했다. ‘사계절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월대천과 함께 파도가 작은 먹돌 사이로 흩어지며 자연의 소리를 내뿜는 알작지 해안가로 유명한 외도마을은 제주시 서부읍면의 경계에 위치하여 도시와 농촌이 융합하는 지역으로, 해마다 인구 유입이 늘면서 아파트와 상가들이 형성되어 살기 좋은 마을로 각광받고 있다.’라고 썼다.

 

  제주올레 17코스와 중복되는 길을 다리 위로 걸어간다. 외도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잰 ᄆᆞᆯ 성안 감시문 뜬 ᄆᆞᆯ은 도고내(도근천)까지 간다고 하여 너무 서두르는 걸 경계했다. 학창시절을 시작으로 차로 수없이 반복해서 오갔던 다리를 직접 걸어보니, 거리가 꽤 된다. 왕복 두 개로 분리된 이 다리는 1996년에 새로 준공한 75m의 길이다. 전에는 바닷가 저편에 방파제가 있어 떨어지는 해를 배경으로 술 한 잔 한 일이 있는데 어쩐지 허전하다.

 

 

*알작지해안

 

포구 설치로 맥이 끊긴 알작지 해안

 

 

  다리가 끝나는 곳에 물허벅 여인상 같은 구조물을 세워놓은 것이 있어 자세히 바라보니, 물구덕에 작지를 한가득 지고 와서 부려놓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이 여인은 설문대할망일 터. 설문대할망이 지금 와서 해안도로와 방파제로 잔뜩 어질러 놓은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어떻든 해안도로변엔 벌써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새로 설치해 놓은 방파제와 포구, 그리고 운동시설로 인해 본디 모습은 사라지고 방파제에 그려 놓은 어설픈 그림과 글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정녕 개발과 보존은 서로 조화로울 수는 없는 걸까? 여기 새겨져 있다고 소문으로만 듣던 어쭙잖은 내 글이 방파제를 어지럽히고 있다. 제주어를 살린답시고 제주어보전회에서 발행하는 덩드렁마께에 실었던 푸시킨의 을 번역한 글이다.

 

  ‘생활이 이녁을 쒝이드람 ᄒᆞ여도/ 설루왕도 말곡 부에내지도 말라./ 설운 날을 ᄎᆞᆷ으멍 살당 보문/ 지쁜 날도 실 거여./ 사름은 베롱ᄒᆞᆫ 날 붸령 살곡/ 일은 당ᄒᆞ영 보문 설룬 거난/ 하간 일은 어쓱ᄒᆞ문 지나불매./ 경ᄒᆞ고 지낭 보문/ 엿말 ᄀᆞᆮ게 뒈느녜.’ - 필자 역, 푸시킨의

 

 

*암맥군

 

알작지보다 뚜렷한 암맥군

 

  해안도로를 건설한 뒤로는 알작지 해안보다는 이곳 암맥군이 더 뚜렷해 보인다. 방사탑이 서 있는 진입로부터 시작된 바위들은 저 현사동에 이르기까지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화산섬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방사탑은 내도동 514-1번지에 있던 것을 해안도로 확장공사로 20179월에 이곳에 옮긴 것으로 바닷가의 둥근 자갈을 모아서 허튼층쌓기로 쌓은 다음 안에 잡석을 채운 것인데, 원래 제주에서는 거욱대라 하여 마을의 방위가 허술한 곳에 세워 부정(不淨)을 막던 것이다.

 

  제주의 마을 돌며 가끔 만나는 방사탑보다는 바닷가로 들어가는 오른쪽에 구기자나무를 장식처럼 걸치고 있는 용을 닮은 바위가 더 눈에 차오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용암길과 해안의 바위들. 마치 수백만 년 전 백악기 공룡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에 이른 듯하다. 등에 지느러미가 울퉁불퉁한 스테고사우르스부터 머리에 뿔을 달고 있는 플레시오사우르스까지 온갖 공룡들이 웅성대는 느낌이다. <계속>

   

    *이 글은  뉴제주일보에 연재했던 내용입니다.

 

 

*내도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