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 오래전 그대에게 – 김승립
그냥 말을 건네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떻게 지냈는지 아픈 덴 없는지 가끔은 내 생각도 했는지
사랑은 때로는 버거운 일이라 뒷덜미 스치는 바람처럼
모든 게 부질없음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냥 어떤 말이라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그냥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정작 뱉어내지 못한 세월의 말들은
붉은 가슴 밑 횡격막 아래 담아두고라도
칠흑 동굴 속 뱀장어처럼 캄캄히 눈멀어
오로지 더듬이의 촉수로만 그대를 겨우 감지하겠지만
한천(寒天)에 피어난 장미의 방향(芳香)이나마 전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는지
또한 어디쯤에서 인사도 없이 돌아섰는지 기억조차 아련해도
내가 건네는 말들이 어눌하나마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다만 겨울처럼 웃고 있는 그대에게
먼 곳에서 올라온 화신(花信) 한 꼭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 금낭화 - 양전형
지상에 가득한 꽃들
저마다
제 가슴에 멍울 선 사람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초여름
어둠이 차츰 쌓여가는 저녁
길들도 일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고
수런거리던 꽃들도
눈꺼풀이 무거운데
저 혼자 누굴 기다리려는 듯
긴 잎자루
하늘을 받쳐 들고
야윈 발로 곧추 섰네
어둠을 휘휘
밀어내며
멍울 선 그 사람 길 잃을까
백열등 주렁주렁 달았네
*동백문학회 간 『동백문학』 2022년 제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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