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2 겨울호의 시(4)

김창집 2023. 1. 24. 01:37

 

 

터진목의 귀향자들 오광석

 

 

터진목 앞 해변에서 겨울을 살다가

북변으로 날아가는 큰기러기들

 

다시 터진목에 찾아왔다

오래전 겨울에 가두어 몸속에 각인된

섬사람들의 혼의 파편들이

고향을 찾아 끌고 왓다

 

해변에 내려앉아

가우가우 구구 우는데

희미하게 섞여 들리는 곡소리

 

활주로에 거대한 인공새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던

고향으로 돌아와 머물지 못할까

그들은

과아한 과아한 어흑어흑

울며 날아오른다

 

 

 

오세진

 

 

ᄃᆞᆯ도 어신 밤

도감네 넘엉

누운오름 꼭데기 올라

ᄉᆞᆱ아나신 ᄃᆞᆨ새기 까놓곡

혼차 거드레기 ᄉᆞ서

ᄇᆞᄅᆞᆷ에 요령 쒯소리 흘치멍

 

죽산이나 간혼이나

ᄀᆞᆸ가릅서 ᄀᆞᆸ가릅서

 

산이 폭도에 총칼에

가던이나 ᄀᆞᆸ가릅서

 

ᄀᆞ만 이추룩 ᄀᆞᆯ으멍

막 물애기 내우게 ᄒᆞ민

 

뒷야게 썹지그랑 ᄒᆞ여지멍

돗털 그끄렁내 콧구망을 찔르난

서우라ᄒᆞ게 지우는 애기가 왕 ᄀᆞᆯ아

 

울 어멍 봐서// // 어멍 어디 이서/

도들오름서 너 ᄎᆞᆽ앙 다니당 죽어부런/ 나 요디 신디 누난/

베염나리서 너 ᄎᆞᆽ앙 다니당 죽어부런/

나 업던 성 어디이서/ 막 아프다 막 메프다/

무사 경헨// 너가 가야주 ᄀᆞᆸ갈라야쥬/

나 베 고팜저// ᄃᆞᆨ새기 먹으멍 가멘/

나 목에 창트멍이 나부런// ᄃᆞᆨ새기로 막으멍 가멘/

영ᄒᆞ민 뒈카// 경ᄒᆞ민 뒈켜 경ᄒᆞ민 뒈켜/

영ᄒᆞ영 ᄇᆞᄅᆞᆷ에 요령 쒯소리 흘치멍 거념ᄒᆞ당

ᄀᆞ만 눈을 뜨민

 

애기 노리 ᄒᆞᆫ 마리 흰 엉둥이 보이고 ᄉᆞ잇당

입 안떼레 깐 ᄃᆞᆨ새기 물고 아침저침 멀어지곡

ᄆᆞ른 가메통천 ᄃᆞᆫ물 흐르는 소리로 운다

 

ᄃᆞᆨ새기 껍데기 보멍 ᄀᆞᆯ아본다

 

 

 

 

가을을 굽는 부부 조직형

 

 

노랗게 굽히는 장어를 뒤적이는

집게 잡은 남자의 손이 서툴지 않다

마주 앉아 기다리는 여자도 편안해 보인다

 

운길산역 바로 앞 콩마을장어집

나들이객들 사이에 눈에 띄는 노부부

오래 같이 걸어온 발을 쉬며 늦은 점심을 먹는 중

 

따끈하게 여물어가는 가을빛

석쇠의 고기가 숯불에 천천히 기다림으로 익어가는 동안

두 사람이 한 사람 같이

서로에겐 말이 필요 없는 듯 눈빛만 읽고 있다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풍경은 언제나 필름이 돌아가는 사진이 된다

 

어제 같은 젊은 날이 굽히고

오늘 같은 계절이 익는다

걸어온 부부의 긴 시간만큼이나 오래

내일을 굽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주름진 얼굴에

가을빛이 발갛게 익어 간다

 

 

 

게우* - 허유미

 

 

상처가 있다

얼굴 절반을 파묻혀 먹고 있다

먹히고 있어 보인다 해도 변명은 없다

상처 난 까닭을 알기 위해

어느 상처가 크고 작은지

재기 위해 우는 시간 대신

너와 게우를 먹겠다

하룻밤 게우를 들여다보아도

게우 생김새를 묘사할 수 없고

색깔조차도 말할 수 없는데

게우가 바다의 상처라고 가슴에 새긴다

거센 파도를 맞설수록 깊은 바다를 알수록

게우 맛은 진해진다 한다

거세고 깊은 만남들에 상처가 없다면

바다는 문장이 아니라 단어로 굳어졌을 거다

문장은 속을 볼 수 있고 단어는 속을 볼 수 없다

상처로 내 속과 네 속을 보아도

우리는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상처를 받아도 상처를 줘도

삶이 성에 차지 않아서

너와 게우를 먹겠다

게우 맛은 상처가 상처를 걱정하는 맛

바다에서 놓치고 흩어진 것들은 상처로 남아

파도가 달려오다 넘어지는 것은

뭍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우의 말

나는 파도인지 뭍인지 고민하는 시간 동안

나와 게우를 먹겠다

 

---

*전복 내장을 뜻하는 제주 방언

 

 

 

나밖에 모르는 나쁜 년 - 현경희

 

 

밥 먹으라 했는데

안 먹겠다 했다

사과라도 깎아준다 하는데

됐다 했다

빨리 낫길l 바라는

애절한 눈빛 삼켜버렸다

다 큰 어른이니 알아서 한다며

신경 끄라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애

늘 엄마 걱정만 해

딸애가 말했다

.

나밖에 모르는 나쁜 년

 

먹고 싶은 거 없냐는 말에

하나도 없다며 짜증냈다

무어라도 먹길 바라는 눈빛에

머리 돌려 외면했다

빨리 낫길l 바라는

애절한 눈빛 삼켜버렸다

다 큰 어른이니 알아서 한다며

신경 끄라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애

늘 엄마 걱정만 해

딸애가 말했다

.

언제 철드니 나쁜 년

 

 

               * 계간 제주작가2022년 겨울호(통권79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