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편 – 성옥순
온달을
반만 닮은 송편
곯은 배
채우지 못한 탓일까
반을 뚝 떼어
달님에게 올렸을까
오늘은
여덟 남매 지문 새겨
속 채워 빚은 달떡
차례상에 올립니다.
♧ 굴비 – 정형무
죽음은 수월찮게 남사스러운 일
무리지어 꼬리친 죄
드러낸 이빨만큼 절규는 제각각
대골을 깨물어 귓돌 발라내고
몸피를 헤쳐 살점 뜯기 전
반짝이던 비늘 꼿꼿한 지느러미
눈 붉은 단말마의 순간을 위해
내 너를 먹어 오늘을 즐기고
나를 갉아먹어 뭇 것들 연명하리니
이빨 마주쳐 군침 삼킨 뒤
입맛 다시며 묵념!
♧ 낙엽 – 서병학
찬바람 불면
떠나야 하는
우리의 아버지들
이력서 들고 이곳저곳
뒹굴어 보아도
어디든 바닥일 뿐
♧ 소금 – 김용태
소금은 꽃이 되려고 바다로 나아갔다
바다는 건너는 게 아니라고
물살이 잠들면 바다를 넘어서
소금 꽃을 꺾어 오겠다고
사람들이 멀리 물살 저어 나아갔다
꽃이 되려는 사람들이 수평선을 넘으려 들 때
아버지는 수차를 돌렸다
수차가 검푸른 파도를 끌어오면
햇덩이도 물살 치며 따라 돌았다
달이 동그랗게 차오르면
꽃이 되어 돌아오는 사람은 안 보이고
저녁 별들이 수평선 어디론가 길을 내며
물살로 차오르고
갯가에서 물뱀이 살 비비며 울었다
갯바람 부는 날 천둥이 울면
물뱀이 따라 운다고
아버지는 해도 없는데 빈 수차에 올라
수평선을 돌렸다
바닷물이 닳고 닳아 빠지면
비로소 흰 상여꽃 핀다고
거기가 바로 수평선 너머라고,
소금 꽃이 돌아오려면 한참 멀었는데
아버지는 인당수 가까이 이르도록
수차를 돌렸다
그런 날은 바다로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옛날의 심청이도 돌아오지 않았다
♧ 세란헌*洗蘭軒 - 홍해리
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난잎을 씻고
내 마음을 닦노니,
한 잎 한 잎 곧추서고
휘어져 내려 허공을 잡네.
바람이 오지 않아도
춤을 짓고,
푸른 독경으로 가득 차는
하루 또 하루
무등, 무등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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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란헌 : 우이동에 사는 한 시인의 달팽이만 한 집.
*월간 『우리詩』 2023년 1월호(통권41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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