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백문학' 2022 제2호의 시(2)

김창집 2023. 1. 25. 01:10

*옛 '대지다방' 옆으로 난 골목

 

[김정자 시인 특집]

 

 

서문통거리

 

 

가을이 오면

울타리 안마다 빨갛게 익은 감이

동화보다 아름답던 서문통거리

이제 길만 휘영청 넓어지고

토종감나무 초가 없어지고

빌딩의 그늘을

더듬더듬 옮기다 보면

어디 갔다 돌아온

앳된 소녀시절이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구나

 

관덕정 언저리의 낭만

알맞은 위치에 있던 대지다방은

문학 동인들만의

우정의 오아시스

 

 

 

차 한 잔의 삽화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마시는

따끈한 찻잔에서

이 세상 어디쯤에 묻어둔

진한 사랑빛 抒情

아직은 식지 않아

외로움으로, 또 그리움으로

되살아 피어오른다

 

하늘이 구름을 이고

땅이 풀꽃을 피워도

始作은 늘 먼 데에 있고

어스름녘 還生의 목탁소리에

내 인생의 장단이 절로 실려

오만도 비겁도 낭만도 순수도

위선처럼이나 너무도 조용하게

고여 있음이여

 

 

 

성묘 하는 날

 

 

어머니 누워계신

해안동 하늘 길에

산 꿩이 운다

부르는 이 없이

불려온 나는

생의 고갯길에 앉아

마른 눈물만 적신다

어머니 흘리셨던 속울음으로

 

 

 

제주 해녀

 

 

열 길 물속 바다에 뜬 섬처럼

가장 춥고 외로운 날

뭍으로 일어서는 바다마을의 주인

제주 해녀여!

 

생과 사를 넘나드는 날렵한 존재로

키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해안도로 따라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간다

 

자식 많이 낳은 죄밖에 없는데

뇌선으로 배 채워도 눈 하나 꿈적 않고

은물결 출렁이듯 가슴에 와 박히는

애달픈 숨비소리

 

 

 

녹슨 유모차

 

 

채울 게 없는 바구니에

한평생의 기록물을 담고

미련을 밀고 간다

세월을 밀고 간다

약속도 없이

기다리는 이 없이

두고 온 듯한 세월의 조각들을

녹슨 유모차에 담고

알 수 없는 세월을 기다리며

내가

나를

밀고 간다

시간을 밀고 간다

 

 

 

더 작아진 내일

 

 

삶은 소풍 같아

각본이 없었지

연습도 없는 이별을

마중하고 배웅하며

 

밤새 안녕

예고 없는 내일을 기약하지

어제보다 조금 더 작아진 내일을

마중하지

 

 

                    *동백문학회 간 동백문학2022 2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