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수풀문학' 2022 통권17호의 시(7)

김창집 2023. 2. 13. 10:54

 

석곡 김원정

 

 

칠 년을 키운 석곡이 꽃을 피웠다

내일은 버리자 내일은 꼭 버리자 하던

칠 년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따지자면 게으름과 건망증이 칠 년을 버티게 해 주었다

시들시들 말라야 인심 쓰듯 콸콸 주었던 물

덥거나 춥거나 붙박이로 자리했던 그곳에서

칠 년 만에 꽃을 피웠다

오롯이 견뎌 꽃을 피우려고 얼만큼이나 안간힘을 썼을까

목이 메게 미안하다

 

흔들리는 석곡 향에 간사해지는 마음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약발 홍기표

 

 

남자의 기를

한방에 뚝 꺾어버리는 요즘 여자들

그래서

남자의 자존심은

늘 바지 속에 숨어 산다

 

찝쩍대는 여자 앞에서

때론 불뚝 성질로 승리의 깃발을

세운 적도 있었지만

기센 여자들 앞에만 서면 고개 숙이는

요즘 남자들

 

그래도 한 가닥 남은 비책

은밀하게 숨겨둔 비상용

거시기 그 약발

 

 

 

냉이꽃 신동영

 

 

쪽파밭 한 귀퉁이

월세로 방을 얻고

뿌리까지 아린 바람

용케도 버텨내어

질기고 마른 듯 엎뎌

키를 키운 하얀 꽃

 

비록 밭 한 뙈기 없이

포개어 발을 뻗고

변할 건 하나 없는

그럴수록 짙어진 기질

몇 달을 풀로 머물다

꽃이라오 오늘은

 

 

 

운명의 노래 김용덕

 

 

잃어버렸다는 기억의 조각은 발자국

소리에 묻혀 어디론가 사라져

윤회의 허공을 만들고 억겁에

불화살은 만생의 영혼 속에

박혀서 다른 세계로 불사른다

 

기억조차 희미하게 땅속으로 묻히며

절망과 희망의 두 봉우리 손바닥으로

물길을 가르며 믿고 믿음은

험준한 갈무리에 막혀서 헤매며

늙은 날갯짓 노을로 날아든다

 

텅 빈 가슴골 휘젓고 소리 없는 메아리

바람이 되어 한바탕 큰 회오리가

춤을 추며 형상 없는 새김을 되새기고

시공을 초월하여 정자와 난자의 업을 업고

머무를 바 없이 하나로 돌아나간다

 

가위바위보 삼박자가 삶의 갈림길을 만들지만

거울은 또 자신이 보이는 모습 그대로 서 있다

 

 

 

풍경소리 유정민

 

 

깊은 골 고즈넉한 산사

처마 끝에 달린 풍경

스쳐가는 바람결에

흔들리며 우는 소리

속세를 지우지 못한

가슴 아픈 울음인가?

 

 

 

잠수병 진해자

 

 

수많은 날을 바다와 살았다

시름에 깎여 구멍 숭숭한 바위처럼

바람 들어 삭아버린 어머니의 세월

참고 참은 설음 저승문턱에서

숨비소리로 토해낼 때

닳아버린 손마디 관절로 남는다

밤새 한숨 푹 자고 뒤척이는 건

문드러진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물질을 놓지 못하는

잠수의 마음이리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2022 통권17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