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2)

김창집 2023. 2. 21. 01:09

 

무불사無佛寺 - 이화인

 

 

연꽃이 소담스럽게 피고 진 연방죽에

시월 하늘이 깊숙이 잠기고

묵직한 산 그림자 느지막이 찾아드니

부처 없는 절에 돌탑 하나 들어섰다

노을이 아낌없이 붉게 타고

먼 길 떠난 오리 떼가 참배하러 왔다가

부처도 없고

노스님도 나들이 중이라

물 위에 낙관만 찍어놓고 날아간다

풍경이 빈 바람만 날려 보낸다.

 

 

 

어항 김성중

 

 

난 보았지

어항 속의 금붕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서

낮잠 자는 것을

 

어항은

하나의 소우주

고요만이 떠 있고

 

어항은 평화

조오름은

해일로 밀려오고

 

금붕어는

아가미를 들썩이며

무희처럼 예쁘게

어항을 춤춘다

 

 

 

레나드 코헨의 음악을 들으며 이윤진

 

 

퇴원한 지 하루 지나

기운 없고 우울감만 한가득

FM 채널을 맞추자

묵직하게 튕기는 기타와

읊조리듯 노래하는 보컬이

자유로운 허공에 울려 퍼지는

아련한 기억 속으로

나를 편안하게 데려다 준다

공상을 좋아할 것 같은 레나드 코헨

사색으로 뭉쳐진 주름 속

철학적 선율이 깊게 담긴

방랑자의 노래가 들려온다

코헨의 묵직한 소리

노래와 함께 우주에 흩어지고 있는 가사

짧게 들려온 단어들이

시처럼 살아 움직인다

살아서 가슴을 두드린다

서정적인 기타 연주와 목소리가

가슴 가까이에 와 있어

가을 정취가 깊어지는 날

나는 다시 살아난다

 

 

 

헛된 꿈 이기헌

 

 

나무가 옷을 몽땅 벗었다

내 속이 다 시원하다

 

때로는 푸르르고 싶었고

때로는 외로움에 물들고 싶었다

그것이 모두 헛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철 지나고 나면 머지않아

또 헛된 꿈을 꿀 것이지만

 

 

 

 

바람으로 살자 임승진

 

 

봄눈 녹는 언덕으로 바람이 분다

눈보라는 떠났지만

따라가기 추워서 되돌아온다

 

푸르게 물든 댓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

가진 것도 없어서

날지 못하는 것들 대신해서 날아간다

 

서산 너머 붉은 노을 따라 바람이 분다

샛노란 청춘 부질없이 보내고

모르는 조상 바라보며 후손도 없이

 

정해 놓지 않은 채 자유롭게

누구에게 깃들지 못하더라도

아무 때나 멈추지 않는 바람으로 살자

 

 

                       *월간 우리2월호(통권41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