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의 시(2)

김창집 2023. 5. 2. 00:03

 

 

영자 씨

 

 

친구 같은 엄마와 딸

영자 씨 오늘은 맑음? 흐림?

아이구 방구 냄새 나는데

어디 봐요

얼레리 꼴레리

우리 엄마 응가했네요

 

아침 일찍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암죽을 만들고

간호사가 방문하기 전 비닐 팩에 담아

높이 매달아 둔다

 

93세의 노모를 딸이 간호 중이다

남동생이 둘이나 있어도

장사하느라 바쁘단다

동생들 돈 많이 벌라 하고

간병을 자청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흥얼흥얼 노래 부른다

반응 없는 엄마와의 대화법이다

씻기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면서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을

딸이 엄마에게 드리는 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여행

후회 없는 이별을 위한

추억 쌓기

탯줄 같은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아버지와 딸

 

 

아침을 알리는 요란한 벨소리

네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언니야,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네네

담배 한 갑 사서 면회 온다면

감동받아서

끊을지도 모르지

하하하

 

면회가 금지된 병원

80세 노인과 딸의 대화

하루 세 번

안부 전화와

잔소리와

다짐이 반복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중동까지

건설현장을 누비던

노장의 근육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화통 같은 목소리가

화난 사람 같아

병실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알고 보면

애교맨인데

 

 

 

잠 못 이루는 사람들

 

 

배선실 정수기 물을

고깔 종이에 따라 들고

창가로 다가서면

제일 먼저 소라탕 굴뚝이 보인다

연기 없는 굴뚝이

등대처럼 외롭다

 

고개 숙이면

나례식당의 그늘에 가려

밤새

몸살을 앓고

 

병실 복도를 서성이는 사람들도

딱히 갈만한 곳이 없어

화장실을 들락거리거나

흡연실을 기웃거리거나

편의점을 들락거린다

 

링거대 들고

휠체어 타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사람들

 

건너편 돼지고기집 무한리필 간판도

불만 환하다

 

 

 

요란한 아침

 

 

7인 여자 병실

조용한 새벽

어머니

맨 안쪽 여자 간병인이 화들짝 놀라

고함을 쳤다

 

침대와 침대 사이

커튼을 사이에 두고

양쪽 간병인이 잠을 잔다

여자 간병인은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다

 

그 옆 침대

부인을 간병하러 온 남편

평소 코 고는 습관이 대단해서

자기가 먼저 잠을 자면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해

방해가 될까봐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들 잠든 뒤에

살짝 들어와서 누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간병인은

뒤척이다 옆으로 돌아누웠는데

어매

시커먼 사람이 옆에서 자고 있어서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아이고, 오라버니

간 떨어질 뻔했수게

핑계에 확 안아버릴 거 아니꽈

놀리고 웃는

쑥스럽고 요란한 아침

 

 

 

자가 간병인

 

 

발목을 다쳤다

그 다친 발로 운전을 하고

산록도로를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자그마한 키에 사각턱

보기만 해도

똑소리가 난다

 

아침이면 우아하게

커피를 끓이고

빵과 과일을 먹는다

쉬지 않고 핸드폰을 보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개방형이다

언제나 식탁 위에는

차와 과일이 놓여 있고

혼자서

천천히 즐긴다

 

낯선 풍경이다

 

 

*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한그루, 2013)에서

* 사진 : 요즘 봄꽃들 - 위로부터 참꽃마리, 현호색, 창질경이, 애기나리, 금새우란, 연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