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3년 봄호의 시조(1)

김창집 2023. 5. 7. 00:44

 

 

목련의 잠 김영란

 

 

시작은 그리

아름답지 않아도 좋아

상처의 역설은

향기가 난다는 것

기막힌 반전이라도

저녁은 빛났잖아

끝난 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노래처럼

길은 또 시작되고

울음소리 부푼다

간신히 다독인 슬픔

붉은 꿈을 품은 거야

 

 

 

 

툰드라 - 김영숙

 

 

저어기 돌담 위에

새순 돋아도

툰드라

 

김 시인 배롱나무꽃

바알가니 피는데

 

송령골 비크레기엔

아직도

툰드라

툰드라

 

 

 

 

금뱃지 - 김정숙

 

 

매일 새 일하고

새 밥 먹고 새 집 살고

 

새 날을 살게

새 소리 하는 거라고

 

구구구 짹짹짹 까옥

그 소리가 그 말인가

 

 

 

 

밀양이라 부르면 - 김진숙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밀양이라 부르면

쇠사슬 칭칭 감은 할매들 마지막 일침

 

산에도 주인이 있다

나를 밟고 가거라

 

밤늦게 도착한 단장면 사연리는

산이 산을 업어주고 달빛 아직 고운데

 

철커덕 감전된 하늘

송전탑은 분명 유죄다

 

가슴으로 우는 바람 손바닥에 닿으면

울력으로 뒤척이다 쏟아지는 문장들

 

어떻게 지켜온 땅인데

비밀스런 햇살들아

 

밀양, 하고 부르면 산으로 오르던 사람들

거대한 철탑에 맞서 맨몸으로 버틴 사람들

 

절절히 부르던 노래

그 노래만 남았다

 

 

 

 

상고대 오영호

 

 

하늘 땅 이어놓은

찬바람 은빛 풀어

한라산 1100고지 펼친 수묵화는

신선한 소리와 빛깔로

내 마음을 깨우는

 

그리움의 물방울이 허공을 떠다니다

가지마다 맺힌 사랑 언제 녹으려나

동박새 한 쌍 날아다니며

낙관을 찍고 있다

 

 

                                 *계간 제주작가2023년 봄호(통권 80)의 시

                                                        *사진 : 등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