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3 봄호의 시조(2)

김창집 2023. 5. 10. 07:56

 

열 밤 자민 - 이애자

 

 

아이는 스무 밤 열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세고

어머닌 열 밤 다섯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새고

제삿날 세고 샌 날도 희끗희끗 새어서

 

한 다리 건너 열에 아홉이 사삼유가족이라

고조모 총살에 가고 고모할망 행방불명이라

깊게 팬 슬픔조차도 허락지 않던 사월이라

 

오메기술 ᄒᆞᆫ 잔 두 잔 술기운이 오르면

제삿날마다 괜히 긁어대던 오촌당숙이

그토록 깽판을 놓고 풀어야 했던 응어리라

 

스무 밤 열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세는 제사에

열 밤 다섯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새는 제사에

성할망 혼절하고야 끝을 보는 제사에

 

애기고사리 열 밤 스무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세는

할미꽃 열 밤 다섯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새는

제삿날 동동 기다려 열손가락 꼽는 봄

 

 

 

 

한라산의 겨울 장영춘

 

 

추울수록 뜨거워지는 민초들의 결기처럼

 

눈 쌓인 선작지왓 서로 등 기대고

 

밟히면 더 단단해지는 뿌리들이 여기 있다

 

 

 

 

물구나무서기 - 조한일

 

 

거꾸로

보는 일로

두 눈이 맑아지고

 

똑바로

보는 일로

두 눈이 흐려져도

 

뒤집힌

이 땅의 풀잎

다시 세울

저기,

저 봄

 

 

 

 

초록 경전 - 한희정

 

 

늙은 귤나무에 새순을 피울 적엔

울 엄니 관절통만큼 밤새 끙끙 거렸겠지

수십 년

늘 그렇듯이

파스 한 장 붙인 채

 

서둘러 걷지 못해 하늘만 우러르네

다산多産의 온갖 풍파 고관절이 부러져도

수확기

다 내어주고도

파랑새가 앉았네

 

등 굽은 어머니가 다시 모으는 두 손

모두가 떠난 지금 너른 품 열어 놓고

입춘 녘

이파리 아래

어린 울음 듣겠지

 

 

                                * 계간 제주작가2023년 봄호(통권 80)에서

                                                 * 사진 – 광대수염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