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밤 자민 - 이애자
아이는 스무 밤 열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세고
어머닌 열 밤 다섯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새고
제삿날 세고 샌 날도 희끗희끗 새어서
한 다리 건너 열에 아홉이 사삼유가족이라
고조모 총살에 가고 고모할망 행방불명이라
깊게 팬 슬픔조차도 허락지 않던 사월이라
오메기술 ᄒᆞᆫ 잔 두 잔 술기운이 오르면
제삿날마다 괜히 긁어대던 오촌당숙이
그토록 깽판을 놓고 풀어야 했던 응어리라
스무 밤 열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세는 제사에
열 밤 다섯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새는 제사에
성할망 혼절하고야 끝을 보는 제사에
애기고사리 열 밤 스무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세는
할미꽃 열 밤 다섯 밤을 ᄒᆞᆫ 밤 자민 새는
제삿날 동동 기다려 열손가락 꼽는 봄
♧ 한라산의 겨울 – 장영춘
추울수록 뜨거워지는 민초들의 결기처럼
눈 쌓인 선작지왓 서로 등 기대고
밟히면 더 단단해지는 뿌리들이 여기 있다
♧ 물구나무서기 - 조한일
거꾸로
보는 일로
두 눈이 맑아지고
똑바로
보는 일로
두 눈이 흐려져도
뒤집힌
이 땅의 풀잎
다시 세울
저기,
저 봄
♧ 초록 경전 - 한희정
늙은 귤나무에 새순을 피울 적엔
울 엄니 관절통만큼 밤새 끙끙 거렸겠지
수십 년
늘 그렇듯이
파스 한 장 붙인 채
서둘러 걷지 못해 하늘만 우러르네
다산多産의 온갖 풍파 고관절이 부러져도
수확기
다 내어주고도
파랑새가 앉았네
등 굽은 어머니가 다시 모으는 두 손
모두가 떠난 지금 너른 품 열어 놓고
입춘 녘
이파리 아래
어린 울음 듣겠지
* 계간 『제주작가』 2023년 봄호(통권 80호)에서
* 사진 – 광대수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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