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의 시(3)

김창집 2023. 5. 6. 00:14

 

 

빈집

 

 

어느 날부터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져

빈집은

점점 허약해지고

적막강산

저체온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빈집이

폐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얼마 만인가

집을 떠나 유배 생활을 한 지가

병원 생활을 뒤로하고

잠깐 귀가했다

 

음식 냄새가 나고

말소리가 들리고

발소리 잦아져

싸늘하게 쓰러져가던 빈집에

생기가 돌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고장 난 로봇

 

 

그는 점점 앵무새를 기르고 싶어 해요

오늘의 평화를 위하여

주인이 원하는 말만 해야 하는데

앵무새는 자꾸

헛소리만 해요

 

그는 점점

애완견을 기르고 싶어 해요

주인이 돌아오면 달려 나가

겅중겅중 꼬리를 흔드는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르다가도

금세 살얼음판

아무리 조심조심 발을 옮겨도

삐거덕 삐거덕

 

자세히 바라보면

서로 닮은꼴이면서도

바라보는 곳이 달라

난처해요

 

야호!

목청껏 외쳐도

메아리는 사라지고

자꾸 성난 파도가 밀려와요

 

삐거덕 삐거덕

우린 고장난 로봇

 

 

 

 

금식

 

 

물 한 컵만 주라

배고파 죽겠으니

우유라도 조금 주라

 

금식이라 안 된다니까요

물이나 음식이 들어가서 위장운동을 하면

큰일 난데요

지금 영양제 수액 다 들어가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보채는 어린아이같이

채워지지 않는 갈증

딱히 배가 고프다기보다

멈추어버릴 것 같은 시간이 불안해

마음에 없는 투정을 자꾸 부린다

 

아무도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채울 수 없는

근원적인

고독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 코로나19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마지막 손잡음으로

온기도 나누지 못한 채

 

희미한 눈동자에

사랑했던 얼굴들 하나하나 새기는데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막내아들 얼굴

마지막 작별의 순간도

허락하지 않는

얄미운 너,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삼팔선 그어놓고

사람 애 태우네

 

타국에서 비행기 몇 번씩 갈아타고

고향으로 날아왔지만

코로나가 무엇인지

이것저것

가로막아

아버지 임종까지 뺏어가 버렸네

 

누구를 원망하리

가슴 아픈 이별의 순간에도

훼방 놓는

 

 

 

 

소나기

 

 

장대비가

아스팔트 위로

콕콕

꽂힌다

 

코로나 예방접종한다

땅도

건물도

골목골목

콕콕

 

죽어가는 지구 살리겠다고

정신 차리라고

천둥 번개까지 친다

   

 

 

                       *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한그루, 2013)에서

                              * 사진 : 요즘 한창 피고 있는 아그배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