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의 시(4)

김창집 2023. 5. 9. 07:58

 

 

위로

 

 

대문을 나서는데

반짝

눈길을 붙잡는다

 

흙이라곤 한 줌도 보이지 않는

시멘트와 시멘트 사이

어떻게 비집고 들어왔을까

 

민들레 한 송이

빙그레 웃고 있다

 

흙 한 줌 없는

그곳

그 좁은

사이를

 

 

 

 

감사한 하루

 

 

비행장 철조망 따라

철길 같은 데크길 걷는다

망루 바라보며 살랑대는 들꽃들과

눈인사하며

실루엣 같은 바람 슬며시

스쳐 지나가는 길에

포로롱 참새 한 마리

철조망 사이를 날아간다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연들

구름 따라 흩어지는 시간

큰 바위 얼굴 같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절로 감사하고 싶은 하루가

지나간다

 

 

 

 

노란 엽서

 

 

도서관 창가에 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

밤새 도착한 노란 엽서들

어디서 날아온 사연들인지

눈이 부시다

오가는 사람 뜸해

아직 배달되지 못한

샛노란 엽서들

오늘은

새들이 먼저 읽고 날아간다

주인을 기다리는 주차된 자동차 위에도

노란 엽서 한 장 도착하였다

도서관 창가에서 걸어 나온

은행나무 한 그루

오가는 사람 뜸한 뒷골목에서

지친 행인이 어깨 위로

위로의 말 건네려 한다

 

 

 

 

연두이고 싶어

 

 

동네 한 바퀴

산책길에 들어서면

울타리마다 연둣빛으로

유들유들

봄 햇살이 속닥속닥

 

게으른 길고양이도

돌담 위로 슬쩍 올라와

연두를 탐내요

쫑긋쫑긋 입을 다시며

줄다리기하듯

햇볕을 잡아당겨요

 

나도 시린 몸을 꺼내

어린 감잎 속으로

유들유들

살얼음 녹여요

 

 

 

 

봄을 기다리며

 

 

앞집 돌담에

무성했던 담쟁이

맥없이 말라가고 있다

 

여름 한낮

싱싱하게 뻗쳐오르던 힘

벽을 기어오르며

지붕을 넘보다 그만

밑동이 잘렸다

 

파란 손의 욕망

누렇게 오그라들어

바람에 바삭하다

 

창문 너머

눈 뜨면 매일 마주 보던

싱싱한 푸르름

하루아침에 사라져

삭막한 달밤

 

재잘재잘

밑동에 새봄 기다리는

아이들 웃음소리

그립다

 

 

 

           *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한그루, 2023)에서

                        * 사진 : 요즘 한창인 이팝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