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3)

김창집 2023. 6. 10. 08:19

 

 

피뿌리꽃

 

 

온 산야 뿌리까지 다 타도록 불을 확 질러버릴까 부다

, 이 가을에 피 뜨겁게 큰 일 하나 저지르고 싶다

 

 

 

 

겨울 동백

 

 

나무에게 있어 꽃이 눈이라는 것을

그 꽃눈이 등불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얀 옷을 입은 동백을 보면 안다

 

그 눈빛은 고요하고 그윽하다

동백 곁에 오래 서 있어 보면 안다

 

동백이 세상을 밝히려

꽃 등불을 흔들 때마다 종소리가 난다

 

어떤 눈 먼 이는 그 종소리를 듣고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고 한다

 

 

 

 

수선화

 

 

수선화는 물의 영혼이 지상에 드러낸 자태

 

칼날 바람 속 언 땅 보듬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공양 올린 손마다 금잔옥대다

 

우구를 위한 애절한 서원인가

 

추사선생이 절절이 사랑했던 수선화

 

꽃향기는 꽃이 하는 말

 

파르르 파동하는 묵언의 소리를 보라

 

 

 

순비기나무를 위하여

    -순비기란 말 속에 숨비소리가 숨쉬고 있다

 

 

수평선을 닮은 나무, 나무 같지 않아 우습게 봤다

나무들은 하늘과 수직적 사랑을 하고 싶어

몸을 키우며 하늘을 우러러 본다

바다가 너무 좋아서 수평선을 닮아버린

순비기는 해변의 모래에 엎드려 하늘에 조복한다

오월이 다 가도록 순비기는 잎 피우기를

잊어버린 듯 움츠려 있다

세상사에 침묵하며 죽은 듯이 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음을 나는 안다

순비기가 세상을 향하여 잎을 피울 때

쏟아지는 향 내음은 뜨겁다

귀를 가까이 대보면 숨비소리도 들을 수 있다

바닷가에서 들리는 해조음도 수평선이 지르는

숨비소리다

해조음 하나 내 귀를 열고 사라진다

 

 

 

 

억새바다

 

 

뿌리 없는 바람 떠돌아

[]로 만나는 바람

그대 살을 후비어

마른 잎새 슬픈 몸짓으로

뿌리 울음 데불고 이마 깨어나

죽음 끝에 만나는 저문 어둠 동냥하며

冥府(명부)의 바다로 떠가나니

그대 작은 가슴 품은 하늘이

어둠 깊어 살에 스며서

이승과 저승 가는 길이

그대 가는 허리 껴안고

바람 깊으니

살점 날리어

거듭 죽는 질긴 슬픔

긴 잠의 무덤 이루나니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도서출판 각, 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