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2)

김창집 2023. 6. 21. 01:22

 

 

[초대작품]

 

 

들풀 민병도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 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민들레 방점 - 권숙월

 

 

   민들레는 책벌레다 바람의 글씨, 물의 문장, 구름의 책 언제 다 읽어내려는지 시험 공부하듯이 중요한 대목마다 방점을 찍어간다 그의 오래된 꿈은 하늘의 백과사전에 방점을 찍어보는 것이지 아기별들과 밤새워 사진 속 온갖 사연들을 읽는 것이지 부푼 꿈 이루려 날개를 달아보지만 아직은 머나먼 기다림이다 봄이 펼쳐놓은 이야기책에 방점을 찍는 밤이면 그 기다림은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 온다

 

 

 

 

 

앉은뱅이꽃 김연동

 

 

여리고 작은 꽃이 시위하듯 피고 있다

흐린 하늘 한 모서리 깨끗이 닦고 싶어

궐기한 사람들처럼

무리지어 피나 보다

 

저만치 비켜서서 혼자서 피는 꽃도

먼 듯 가까운 듯 저 꽃 속 꽃이 되어

서로가 젖어 우는 날

꿈꾸고 있나 보다

 

 

[특집 2] 무오 법정사지

 

 

 

법정사지 고사리 이창선

 

 

서귀포 법정악* 한라산 둘레길에

고지천옆 산중에 봉려관이 세운 절

도린곁 무너진 돌담 고사리만 무성해

 

항일항쟁 수단을 꽃 피우기 위해서

김연일*의 거룩한 뜻 실행에 앞선 스님들

서귀포 순사주재소*에 서릿발을 내리다

 

무오년 그 모습이 선명하게 오는 오늘

우리는 이 빈터에 무엇을 새겨 놓을까

먹먹한 가슴 헤집는 고사리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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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악 : 서귀포시 하원동 산1-1번지에 있는 오름.

*봉려관 : 비구니(18631938)1908년 관음사, 1911년 법정사를 창건, 제주불교 중흥조이며 애국자이시다.

*김연일 : 법정사 주지.

*순사주재소 : 일제강점기 파출소.

 

 

 

 

법정사 옛터에서 한희정

 

 

나뭇잎 흔들려요

맞바람 항변인가요

 

후드득 소낙비 꽂혀요

눈물 감춘 절규인가요

 

새싹이 뾰족 돋아요

우주 향한 일침인가요

 

 

 

               *혜향문학2023년 상반기호(통권 제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