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1)

김창집 2023. 6. 22. 07:30

 

 

시인의 말

 

 

처음에 나는

세상의 꿈이고 희망이었음 했다

 

지금도 그렇다.

 

 

 

 

자화상

 

 

조각구름들 작은 섬들이라면

여기 나는 작은 돌고래

슬픔을 분수같이 토해 내는

진화하지 못한 포유류

억만년 원죄 어쩌지 못하는

아가미도 없는 물고기

힘찬 유영으로도 닿지 못하는

본능의 대륙붕 너머 마른 모래톱

비늘 털어 내고 지느러미 잘라 내고

뭍으로 기어오를 그 날에

선혈처럼 붉은 해당화

 

 

 

 

포스트잇

 

 

우리네 사는 마을은

다 거기서 거기에요

색깔이야 각자 다르지만

서로서로 등 붙이고 살다가

떨어질 땐 쉽게 떨어져야죠

너무 꽉 붙으면 언젠가

찢어지는 아픔을 겪을지도 몰라요

이별할 땐 예쁜 기억만

살짝 메모해 두는

 

 

 

 

피뢰침

 

 

빛바랜 옥탑 우뚝한

라만차 돈키호테의 녹슨 창

 

햇빛 쨍쨍한 날 뜨거운 인내

지루한 기다림

 

폭풍우 속 번개 같은 까달음

짜릿한 전율

 

하늘 땅 연결하는

수신기

 

 

 

 

차음벽

 

 

도로 곁에 성벽 하나 생기자

그만큼 올라간 하늘

 

민들레 씨 풍선도 팽나무도 화살나무도

분주한 박새도 높아진 하늘에 매달려

길어진 발목을 곧추 세웠다

 

길을 잃은 소리가 허공을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소리조차 넘지 못 하는 거대한 성벽 아래

곤줄박이 날개가 무참히 꺾여 있다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우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