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산림문학' 여름호의 시(1)

김창집 2023. 6. 22. 23:59

 

 

수목원을 걸으며 김용학

 

 

매일 새벽

수목원을 홀로 걷는다

그곳은

사계절이 사이좋게 오간다

 

꽃들의 향연이 열리는 봄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

풍요로운 단풍의 가을

침묵과 적막 속의 겨울

 

삶에도

이 모든 흐름이

너울거리지만

 

그곳은 인생이라는

공식도 정답도 없이

모든 과정을 담아낸다

 

흐르는 세월 속

법이 없고 식이 없는

꽃이여, 나무여!

 

치유의 스승이여

나의 벗, 나의 애인

사랑이여

 

 

 

 

해변으로 가면 김학균

 

 

두 어린이 엄마 손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해변 길

파도는 이랑지며 놀고

 

태양이 스치듯 지나다가

추억을 널어놓은 수평선

꿈 노래를 연주하는 파도

햇살 아래 잠든 꽃 등대

 

넘실거리며 다가와

해변을 쓰다듬는 잔물결

여인이 사랑했던 추억과

어린이의 꿈이 찰랑거린다

 

 

 

 

간월도 구자운

 

 

달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인

어리굴젓이 임금님 진상품인

 

무학대사님이 득도한 연화대

철새무리가 도래하는 피안도

 

 

 

 

세한도 신원철

 

 

며칠 있으면 2월 정년퇴직

송별식을 하고

받은 꽃다발 추려서 물병에 꽂아놓고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눈이 나리기 시작했다

양쪽 창밖 펑펑 쏟아지는 영동지역의

봄눈

꽃의 향기 잔잔히 감아 도는데

세상은 점점 하얗게 덮여가고

바람은 잦아들고

주차장도 나무도 서서히 백화되는

추사의 오두막

홀로 책상 앞에 앉은

흑백 필름

15평 저층 주공아파트

 

 

 

 

나무에게 말 걸기 - 이산

 

 

가끔은 물어야 할 안부를

깜박 잊고 사는 사람은

저녁을 향해 길을 가면서도

발자국이 하늘에도 찍힌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말의 의미들이

목소리와 잘 섞이지 않는다는 느낌은

어린 묘목을 심고 물주는 사람의 기우杞憂입니다

 

생활의 간극이 벌어져 있는 사이를

바람의 손을 빌려 만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을 건네지 못하는 것은

사이가 계속 어두워진다는 조짐입니다

 

언어의 초점이 어긋난다 하더라도

눈을 맞추며 작약 빛 미소를 보내는 것으로

손등을 쓸어주는 이파리의 부드러운 흔들림으로

진동하는 파롤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계간 산림문학2023년 여름호(통권 5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