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의 시(1)

김창집 2023. 7. 5. 00:59

 

[오승철 시인 추모 특집 주요 수상작]

 

 

오키나와의 화살표

 

 

오키나와 바다엔 아리랑이 부서진다

칠십여 년 잠 못 든 반도

그 건너

그 섬에는

조선의 학도병들과 떼창하는 후지키 쇼겐*

 

마지막 격전의 땅, 가을 끝물 쑥부쟁이

풀을 먹든 흙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그때 그 전우애마저 다 묻힌 마부니언덕

 

그러나 못다 묻힌 아리랑은 남아서

굽이굽이 끌려온 길,

갈 길 또한 아리랑 길

잠 깨면 그 길 모를까 그려놓은 화살표

 

어느 과녁으로 날아가는 중일까

나를 뺏긴 반도라도,

동강난 반도라도

물 건너 조국의 산하, 그 품에 꽂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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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조선학도병 740인의 위령탑 건립과 유골

봉환사업에 일생을 바쳤다. <고산문학대상> 수상작.

 

 

 

 

ᄆᆞᆷ국

 

 

그래, 언제쯤에 내려놓을 거냐고?

혼자 되묻는 사이 가을이 이만큼 깊네

불현듯

이파리 몇 장 덜렁대는 갈참나무

 

그래도 따라비오름 싸락눈 비치기 전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 걸어놓고

가난한 가문잔치에 부조하듯 꽃불을 놓아

 

하산길 가스름식당

주린 별빛 따라들면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바다

그마저 우려낸 ᄆᆞᆷ국,

ᄆᆞᆷ국이 되고 싶네

                                           <한국시조대상> 수상.

 

 

 

 

터무니 있다

 

 

홀연히

일생일획

긋고 간 별똥별처럼

한라산 머체골에

그런 올레 있었네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

 

그해 겨울 하늘은

눈발이 아니었네

숨바꼭질 하는 사이

비잉 빙 잠자리비행기

<4. 3> 중산간 마을 삐라처럼 피는 찔레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

할아버지 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

화덕에 또 둘러앉아

봄꿩으로 우는 저녁

                                                <오늘의시조문학상> 수상작

 

 

 

 

?”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번 묻는 말

?”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

 

                                            <중앙시조대상> 수상작

 

 

 

송당 쇠똥구리.1

 

 

겨울 송당리엔 숨비소리 묻어난다

바람 불지 않아도 중산간 마을 한 녘

빈 텃밭 대숲만으로 자맥질하는 섬이 있다

 

대한에 집 나간 사람 찾지도 말라 했다.

누가 내 안에서 그리움을 굴리는가

마취된 겨울 산에서 빼어낸 담낭결석(膽囊結石)

 

눈 딱 감고 하늘 한 번 용서할 수 있을까

정월 열사흘 날, 본향당 당굿마당

4.3땅 다시 와 본다, 쌀점 치고 가는 눈발.

 

그렇게 가는 거다. 신의 명을 받아들면

정 하나 오름 하나 휘모리장단 하나

남도 끝, 세를 든 세상, 경단처럼 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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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리 : 구좌읍의 중산간 마을. 멸종 위기의 쇠똥구리는 이 지역 인근 오름 등에서만 볼 수 있다.

           

                                  <이호우시조문학상>

 

 

 

 

사고 싶은 노을

 

 

제주에서 참았던 눈

일본에 다시 온다.

삽자루 괭이자루로

고향 뜬 한 무리가

대판의 어느 냇둑길

황소처럼

끌고 간다.

 

파라, 냇둑공사 다 끝난 땅일지라도

40여 년 <4·3>은 다 끊긴 인연일지라도

내 가슴 화석에 박힌 사투리를 쩡쩡 파라

 

일본말 서울말보다

제주말이 더 잘 통하는

쓰루하시*, 저 할망들 어느 고을 태생일까

좌판에 옥돔의 눈빛 반쯤 상한 고향하늘

 

송키**, 송키 사압서낯설고 언 하늘에

엔화 몇 장 쥐어 주고

황급히 간 내 눈님아

한사코

제주로 못 가는

저 노을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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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하시 : 일본 대판에 있는 쓰루하시(鶴橋)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도민들이 <평야천>공사를 위하여 노역을 갔다가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다.

**송키 : ‘야채반찬꺼리의 제주어.               

                                                         <한국시조작품상> 수상작.

 

 

             *정드리문학 제11박수기정 관점(문학과 사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