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3)

김창집 2023. 7. 3. 00:09

 

 

낙화

 

 

하르르

무심천 벚꽃이 지네

물 위로 지네

 

사람마다 가슴속 강 하나씩 품고

하르르하르르

지는 꽃잎 둥둥 싣고

무심하게 떠나네

징검징검

봄빛을 딛고 무심천 건너네

 

 

 

 

목련

 

 

물관에 숨겨둔 설국의 전설

꽃잎으로 조각되는 봄날

북쪽 하늘로 보내는 엽서*

 

모은 손길 사이로

뭉게구름만 눈부셔

 

다시 푸른 시절이 오고

참혹한 낙화의 시간이 오면

 

지는 꽃잎과 함께

아지랑이 사이로 흐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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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꽃은 북쪽을 향해서 핀다.

 

 

 

 

이별

 

 

장미가 담장을 에워쌌다

횃불 하나씩 들고 성벽을 치고

가시를 품은 물방울이 아리게 투명하고

 

바람이 엉겅퀴 꽃대를 흔들고

토끼풀의 잎을 들추고

나비의 날갯짓에 반짝이는 향기

구름 속에도 정원이 있어

하늘 깊이 뿌리를 내렸다

 

소매 사이로 파고드는 매미 소리

비둘기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허공이 파문을 내며 아득히 멀어졌다

 

정물이 된 시간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있다

 

 

 

 

바람

 

 

여긴 문이 없어

쉴 수도 없어

헐렁이는 신발과

치렁치렁한 셔츠와

뒤집히는 치마와 산발한 머리카락만 가득해

 

담을 쌓고

정원에 측백나무 한 그루 심고

마냥 기다려

 

흔들리고 흔들리면 언제 점 하나 찍을 수 있을까

오동나무 심장 가질 수 있을까

대나무 같은 뿌리 얻을 수 있을까

 

텅 빈 들판을 서성이다

잠든 풀잎을 깨우고 싶지 않아

단 하루만이라도 팔베개가 될 수 있다면

 

 

 

 

바람의 언덕

 

 

바람이 언제나 먼저 와 있다

 

가지산 계곡 기억들을 싣고

단장천이 따라오고

계령산 느린 능선이 애기 걸음으로 다가온다

 

청솔가지 휘돌아 바람이 빠져나가면

아버지 비석엔 돌옷이 말라있다

 

어머니 청상의 세월은

바람으로 바람을 잠재우는 시간이었다

 

흐르다가 흐르다가

그렇게 바람 같은 세월은

팔월의 뭉게구름 같이 모여 모여

시퍼렇게 멍든 하늘을 지켜내고 있다

 

   

        *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우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