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림문학' 2023년 여름호의 시들(3)

김창집 2023. 7. 4. 00:25

 

          *울진산불지역에 새 생명을 심다

              -시의 나무를 심은 문인들 편

 

 

 

모두 봄이 되었다 김재준

 

 

풀 가지 하나 입에 물지 못해

죽은 새와

숟가락 빨다 잠든 아이들

 

사막이 삶이 된 불모지에

나무 심다 먼저 간 이들은

초록별이 되었다

 

그 별들이 사는 하늘에서

지저귀며 노래하는 새와 아이들

괜스레 눈가에 얼룩이 진다

 

하늘을 나는 새여

무덤 없던 아이와

그리고 초록을 심은 이들이여

 

풀때기 하나 없던 산하에

나무가 자라 푸른 생명이 되었구나

숲의 신령이 내려

모두 봄이 되었다.

 

 

 

 

가시 벗은 음나무를 심고 장재관

 

 

화마가 할퀸 자리를 고이 다듬어라

천적을 방어하던 가시갑옷

과감히 내려놓았으니 이제 옥토로 가꾸어라

 

오늘은 하늘이 보살피는 은혜로운 날

가뭄으로 타들던 이 강토 적시는

악비가 흠뻑 내리는구나

 

우리도 한때 정신 줄을 놓았던 탓에

빼앗겼던 이 터전 이 나라

힘을 모아 다시 찾은 기쁨을 기록하듯

지금의 영화를 누릴 수 있음도 새겨서 배우고

 

무럭무럭 자라면서 봄을 맞을 때마다

싱싱한 새순을 두었다가 오가는 이웃들에

보시하는 영광도 벅차게 누리거라

 

 

 

 

느린 우체통 조재학

 

 

카페에 앉아서 통유리 밖 바다를 봅니다

바다는 너울을 해안으로 힘껏 밀어보냅니다

자주 자세를 바꾸며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 그러나

제방 위 느린 우체통에는 닿지 않습니다

 

오늘은 식목일, 나는 그 산에다 어린나무를 심었다

고 쓴 편지를

느린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우리 증조할머니보다 더 나이 많은 나무들 사이를 불덩이가 날아다녔어 휙휙 날아다니는 불덩이들이 온 산의 나무들을 태우고 우우 건너 산으로 몰려갔어 헬기가 물을 퍼붓고 산림공무원들이 물호스를 들고 이리저리 뛰었지만 바람 많고 고압선으로 칭칭 감긴 산은 접근이 어려웠어 그렇게 한바탕 불의 시간이 갔어

 

밑동만 시커멓게 남은 산, 아픈 산, 앓는 산에 우리는 어린나무들을 심었어 비가 오고 있었어 모두 상제처럼 하얗게 우비를 입고 허리 굽혀 어린나무를 심었어 멋모르고 내려앉은 어린 학처럼

 

그렇게 쓰고

느린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우체통은 느리므로 편지는 아주 느리게 누군가에게 가겠지요

 

파도는 아직도 우체통에 닿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파도와 우체통은 사실 서로 바라만 보고 있으라고 생긴 것인지도 모르지요

 

시간은 느린 우체통 같은 게 아닐는지요

 

 

 

 

우리의 미래 조철규

   - 탄소중립실천 캠페인

 

 

이제 우리들의 사계절은 말라죽고

들새가 물고 가다 놓친 그 한 점 하늘

무얼 더 비추지 않는

거울 되어 저문다

 

어둠 지나 동틀 무렵 동녘에서 오는 사내

다른 두 세상이 양 어깨에 얹혀 있고

한켠이 남천南天이어서

다른켠은 북천北天이다

 

꿈은 동출렁이다

西으로 가서 지고

다시는 사내더러 비유케 할 필요찮아

의 낱낱 개수이고

의 낱낱 개수들로

거침없이 흩쳐놓아 자유로운 산줄기들

산길은 어디서나 연이어 닿아있고

다시금 우리 앞에 돌아와 앉았네요

 

바람마저 맨발로 달려오다가

우리 옆을 이내 스치고 가면

죽은 과거가 머리 풀고 달려오고

오다가 그만 죽는 미래의 말발굽들

마지막 동백 잎닢이

생시生時를 쪼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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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대한 대처로 탄소중립실천만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미래입니다.

 

 

 

 

고맙습니다 주로진

 

 

활활 치솟는 산불 앞에서 꼿꼿이 선 채

절규하는 나무들을 보면서

화마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복면의 저들을 잇지 않게 하소서

 

성난 불길을 잡으려고 밤낮없이

숨차게 숨차게 피땀 흘리는

갈퀴와 비탈의 괭이들을 잊지 않게 하소서

 

물 한 방울 행여 허공의 이슬이 될라

낮은 비행의 사선을 넘나들며

세찬 바람을 호통도 치고 애원도 하면서

바닷물을 퍼붓는 헬기들을 진정,

진정 잊지 않게 하소서

 

숲의 나라이고 나무들의 무모와 형제

자식들이고 아내인 빨간 방화복들,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혼절까지 하는

저들의 의기, 언제까지나 기억하게 하소서

 

글고, 천연의 숲처럼

한국산림문학의 태동이 된

아까시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고맙습니다

 

 

                   * 산림문학2023년 여름(통권 5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