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치 – 김석규
처리된 방사능 오염수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굳이 바다에다 쏟아버릴 이유가 무엇인가
저수지를 만들어 가두어두었다가
혹심한 가뭄에는 농업용수로 쓰거나
하늘을 찌르는 생산시설의 공업용수로 쓰거나
도시의 하수관로와 연결해 처리하면 될 것을
왜 이웃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을 끓게 하는지
♧ 열대야 – 홍해리
벽에 걸려 있는 시래기처럼
실외기室外機가 뜨겁게 울고 있는,
골목마다 널브러진 쓰레기같이
사내들이 헉헉대고 있는,
한여름 밤에 나는 이 불은
이불을 걷어차고
열 대야의 찬물로도 꺼지지 않는
화염지옥
내 다리 나의 다리 겹치는 것도
열나는 밤, 열대야!
♧ 연필을 들면 – 김영호
연필을 들면
문이 열리네
문이 열리면
영혼이 숲 속 새들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네
연필을 들면
문이 열리네
문이 열리면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이 백합화를 안고 들어와
우는 귀를 만지네
연필을 들면
내 안의 우울이 문을 열고 나가
소를 몰고 밭고랑을 가네
감자를 심네.
♧ 부부의 날 – 박원혜
가정의 달 5월
늙으신 친정어머니는 시집간
막내딸을 기다리시고
집 밖에서
꼬부리고 앉으셔서 눈이 빠지도록
신작로를 바라보고 계시고
외로운 중년의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고
노년의 외로운 남편은 동창회 간 늙은 아내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오월의 장미는 당장 밖에서 푸르게 피어 있고
♧ 사과의 참맛 – 이규홍
사죄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입술에서 멈춘 사과
무늬만 사죄일 뿐
한순간
힘들지라도
남의 탓은 안 된다
사과의 재배 면적
갈수록 줄어든다
부끄러운 마음조차
머물 곳 없다 하니
보아라,
사과의 참맛!
붉게 물든 저 사과 밭
* 월간 『우리詩』 7월호(통권 421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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