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와 능소화

김창집 2023. 7. 6. 00:47

 

 

어머니 회상 오기환

 

 

밤 이슥한 섣달 추위 아들에게 등불 들리고

맑은 물 흐르는 곳 별빛에 치성드린다

하늘땅 신령님들께 수도 없이 빌어댄다.

 

촛불이 펄럭이고 어둠의 무서움도

당신의 지극정성 한 곳에 꽂아둔 듯

어머니 바램의 소지 기원들이 타오른다.

 

 

 

 

손님별 - 우아지

 

 

사람이 온다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기대를 등에 업고

마중하는 앳된 먹밤

이 아침 은수저를 닦는 마음도 윤이 나고

 

간밤을 적시던 비 풀잎마다 끼운 반지

오늘을 기다렸어

양초에 불을 켜고

새하얀 순도 100% 식탁보를 꺼냅니다

 

오븐을 예열하는

창 너머 어스름 녘

열과 성을 듬뿍 넣어 저녁을 익힙니다

가슴에 꽃이 피도록 새 밥 지어 올립니다

 

 

 

 

놀멍놀멍 봅서* - 이석래

 

 

먼 바당 내려다본다 온몸으로 꿈을 꾼다

은물결 출렁이듯 보송보송 솜털 덩이

향기가 만들어 놓은 억새꽃 지천이다

 

부드러운 털에 덮여 아스라이 보인 바당

흰 날개 곁에 서면 나는 순한 양이 되는

변신한 갈색 양탄자 오름길엔 덤이다

 

산굼부리 물들이는 물보라 억새 숲엔

물꽃이 파도치는 난 바다 숲 숨어들어

수려한 바다의 비경 꽃 희게 피운다

 

 

 

[회원 작품]

 

 

노탐 - 김대규

 

 

똑딱 소리가 아니어도

시간은 흐르고

한 구름 한 조각 흐르지 않아도

시절은 간다

쌓인 한을 추억하지 않아도

내 영혼은 이미 고단하네

부질없는 삶을 애써 외면하고

누구도 모르는 사랑은

노탐인 양 접어둔다

 

 

 

 

동백 김승범

 

 

손짓하여 붙잡지 마라

곱게 시들기 어렵거든

저렇게 툭 떨어져라

빈 가지가

아쉬움으로 그리워하게

자존심 높은 꽃은

종말에 더 아름답다

그 무엇 때문이라는 변명도 없이

외마디 변명도 없이

 

 

 

제주 올레길 산조 김용길

 

 

(1)

새벽 안개 사이

마당 밖 올레길이

바닷가로 이어진다

 

밤새 파도의 발자국이

젖어 있는 길

쓰러진 풀잎들이 다시 일어선다

 

운무 걷히자

윤기 나는 햇살들

바윗등에 부서져 내리고

두 손 흔들며 돌아오는 올레길.

 

 

(2)

바람막이 돌담 구멍 사이로

하늘의 하얀 속옷이 보인다

 

파도의 심술에

들척이는 치맛자락

부끄러운 가슴살 보이고

 

여지껏 넘어가지 못한

생선뼈 같은 그믐달

서녘 구름발에 결려 있다

 

새벽 올레길

허공에 뜬다

 

 

                       *혜향문학2023년 상반기 제20호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능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