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문학회 제11집 '박수기정 관점'에서(4)

김창집 2023. 7. 26. 00:04

 

 

화산도 곶자왈 - 오순금

 

 

용암이 흐른 자리 돌무더기 가시덤불

가다가 숲이 되고 가다가 그리움 되어

제삿날 어머니 무덤가 새소리나 놓고 간다

 

 

 

 

아버지 - 오은기

 

 

조금만 더 기다려 줍서

샛년 지금 감수다

돈내코 굽이굽이 돌아드는 물결처럼

화급한 나의 마음을 신호등이 막아선다

 

왜 이러나,

두 달 전쯤 간 장마가 왜 또 이러나

일본 중국 거덜 냈으니 다시 우리 차례라고

온종일 가을배추가 잠기도록 비가 온다

 

저녁 일곱 시 쯤 느닷없는 어머니 전화

세상에 눈 감는 일

조금만 더 기다려 줍서

오늘이 생신이신데 뭐가 그리 급하신지요?

 

 

 

 

세천포구 - 이미순

 

 

위미리 동백숲은 간세 간세 간세다리

큰엉과 쇠소깍 사이 양푼 하나 달랑 들고

올레길 5코스 따라

동박새 재잘댄다

 

여름날 물때 맞춰 상군해녀 똥군해녀

파도와 파도 사이 숨비소리 넘실댄다

우리집 돈줄만 같은 어머니 테왁망사리

 

쉰다리 한 사발로 점심 한 끼 때우고

식구들 둘러앉아 성게 까는 세천포구

조카딸 잔치 소식도

숟가락에 묻어난다

 

 

 

 

하례포구의 저녁 - 이정환

 

 

그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한 적이 없다

그는 어느 때든 무심하지 않지만

허공에 매달릴 것 같아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그는 내 뒷덜미를 툭툭 치며

연신 돌아볼 것을 무시로 강권했다

노을에 빨려든 그의 퍽 익살스런 행패

 

서으로 가야겠다 서에 오래 머물겠다

그런 혼잣말 끝없이 되뇌는 동안

서귀포 서녁구름은 동녘으로 몰렸다

 

아직은 아니다 좀 더 오래 지켜보라

별빛의 속삭임 귓전을 맴돌 무렵

파도가 휘몰아치며 하례포구를 때렸다

 

 

 

 

사라오름 - 조안

 

 

더는 참을 수 없어 터지고 솟구쳤나

솟구쳐 흐르다 굳어 돌덩이가 되었나

천 년을 닳고 닳으며 바닥에서 기다렸나

 

일 년에 단 며칠은 차고도 넘치면서

산정山頂 그득한 물에 그대 마음 비치어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물 속을 걸어보네

 

많은 올챙이 중에 너 하나 다가와

발가락 간질이네 옴찔 나 놀라네

 

알아요, 당신이군요

천 년 뒤에 만날 우리

 

 

            * 정드리문학 제11박수기정 관점(문학과 사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