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3)와 배롱나무 꽃

김창집 2023. 7. 28. 00:17

 

 

김항신

 

 

한동안 그녀는 할머니, 라 했대

머리도 할머니

할머니 옷도 할머니

할머니 마음도 할머니

할머니 몸도 불뚝불뚝

 

한동안 그녀에게 말했었대

사십 대 미시족

머리도 옷차림도 그렇게

이국적이라고

 

다시 할머니를 봤어

팬데믹 오던 날 이제 그만

봄이고 싶고

가을이고픈 할머니

 

벨롱 머리 요정*

이렇게 말했대

할머니~~~

아직 괜찮아

 

---

* 벨롱 헤어샵

 

 

 

 

()의 탈출 문무병

 

 

많은 걸 말하지 않겠소.

친구다운 수다 또한 서툴러 바람이

샘에게 드리는 선물

나의 발자국 하나와 영이

바다를 건너 다시 한 번

무심천변을 돌다 온 얘기를

나는 이를 영의 탈출이라 하겠소.

 

얘기를 거는 데는 큰마음인 듯 무심하고

자잘한 맘 가득 담아 인정 넘쳐나는

(+)과 음(-)의 중간 영(0)이요 중심이니

샘과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사랑

낭만이라 감히 말하는 우리들의 얘기

영의 탈출이라 자유롭고

영혼의 비움이며 욕망과 현실의 충만이라

따뜻하여 그득하니

의지하면 마냥 좋은 낭만의 그늘

 

 

 

 

반태양경배자세 - 서안나

 

 

반태양경배 자세를 하면

누군가 내 별을 훔쳐간다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경배할 때

내 발끝에 사는 신을 영접하는 것

초근목피하며

머리 검은 짐승은 식물처럼 고요해지지

 

상심은 왜 시계 방향일까

밤은 밤의 마음을 적시고

백 년 동안 울었던 귀를 씻으면

외로운 것들은 현묘하여

감정은 열두 개의 머리를 죽여도 죽지 않고

 

운문적 인간은 사람과 개를 버릴 권리가 없으니

보름날은 한 번 더 나무를 열어 본다

 

 

 

 

바둑 13 양동림

     -기원

 

 

바둑을 배우는 아들은

기원으로 가자고 조른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기 집을 세고

너의 집을 세고

그렇게 서로 집을 짓는 곳

 

아들이 바둑을 두며

큼직큼직 집을 짓는 동안

나도

두 손 모아 기원을 한다

우리에게도 집 한 채 있어

가족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너산밧*

 

 

허물어져가는 돌담

집터만 남은 자리

희미해진 올레

여전히 너는 서 있다

또렷이 떠오르는 사람들

돌아오지 못하고

그냥 너만 살았다

너만 마을 터를 지키고 있다

빌레못으로 숨어들어간 사람들

출구 없는 어둠 속을 헤매다

육신이 녹아 사라지면

산을 내려온 바람을 타고

돌아오는 사람들

홀로 살아 터를 지키는

너만 살았다고 아무도 타박하지 않아

그냥 오래된 이야기라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전히 살아간다고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입구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팔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

*애월읍 중산간 어음리에 위치한 43 당시 사라진 마을

 

 

                   * 계간 제주작가2023년 여름호(통권 81)에서

                       * 사진 : 요즘 한창 피어오르는 배롱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