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해녀 – 조한일
바다가 해녀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바닷속 사막으로 낙타는 갈 수 없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그곳일 순 없어도
양수 닮은 바다에서 알몸으로 살아온
조난 신호 내뿜는 주름진 저 향고래
사람은 늙었다는 것이 살아남는 거라지
물속의 갯녹음 현상은 실패한 테러라는
성게가 흰 바위에 찔라 쓴 자백서로
말한다, 최후의 해녀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 본향당 가는 길 - 한희정
오곡백화 만발한 고향,
늙은 흑인의 소원처럼
일뤠할망 뵙기 청하는
어머니 묵언정성
새벽길 초이레 달이
길마중을 오겠지
가난한 타성바치
어긋나지 않기를…
하천변, 잡목숲 지나
가쁜 숨을 내쉬면
저만치
마음을 여는
조배낭 우뚝 서 있네
♧ 플루트와 그녀 – 강연미
플랫과 샵 사이 붉은 입술 내밀어요
하고 싶은 말들과 듣고 싶은 말들 사이
단단히 침묵한 당신
나를 받아줄래요
원초적 본능 같은 소리의 공간
손가락 행렬들로 비밀번호 풀어요
다장조 해류를 타고
당신에게 갈게요
오케스트라 협주곡 2악장을 넘어가요
반짝이는 음표들이 윤슬처럼 흐르면
생머리 그녀의 사랑
수초처럼 자라요
♧ 노가리의 노가리 - 김영란
돈 없고 빽 없응께 이름이나 있었간디
무명의 하세월 눈물 콧물 짰었지라 생태 동태 지들 맘대로 춘태 추태 부리다가 망태 조태 것도 모질라 짝태 먹태 되는 냥 불러보다 좋아지면 지화자 계급상승 황태로 신분세탁 코다리로 유명세 좀 탔지라
툭하면 노가리 깐다고 두들겨 패지나 말지
♧ 문자 돋아나는 봄 – 김정숙
한 소쿠리 글을 먹으며 봄 한 철을 살았다
수십억 년 건너는 자모음 유전자들이
나라는 행성 속으로 허겁지겁 들어왔다
끊임없이 짝을 바꾸는 새 것들의 염기서열
꿩마농 들굽을 먹고 달래 두릅이라 쓰는
암묵의 문자서열은 입맛 따라 바뀌지만
산다는 건 밥 먹고 밥이 되는 무한반복의 장르
풀 읽은 소가 밭을 갈고 사람은 쓰기에 좋았다는
나물은 고전이었다 볼록렌즈가 쌉싸름했다
*계간 제주작가 2023년 여름호(통권 제81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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