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개혁과 개방, 어디까지 (5)

김창집 2005. 3. 30. 20:25


--- 상해·소주·장가계 답사기(2005. 2. 25.∼3. 1.)

 


 

* '세계제일제'라 써놓은 엘리베이터 타는 곳 입구

 

▲ 바위를 뚫고 만든 엘리베이터

 

 이튿날 언제 그랬냐 싶게 날씨가 좋았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장가계 국가삼림공원 안에 있는 원가계로 간다고 했다. 언제나 멈추는 곳은 무릉원구정부가 자리잡은 삭계욕진(索溪山+谷鎭)까지 가서 차를 세워두고 셔틀버스를 이용하게 돼 있다. 가는 길이 워낙 좁고 험한 길이여서 아무나 운전할 수 없을뿐더러 대형 차량은 위험해서 취한 조치인 것 같았다.

 

 오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기암(奇巖)들의 크기와 높이는 마치 10여 층 짜리 마천루들이 늘어서 있는 것과 같다. 안내서에는 무릉원은 특이하고 다채로운 풍경을 갖고 있는데, 항공 촬영 판별 통계에 따르면 석영사 암봉림의 산봉우리는 무려 3,103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높이가 1천m 이상 봉우리만도 243개이고 최고봉인 토끼 망월봉은 1,256m이다. 그리고, 깊이 200m 이상 산골짜기가 32개에 달한다고 한다.


 


 

* 바위를 뚫고 솟은 엘리베이터

 

 중국 사람들조차 이곳을 '경전(經典) 산수(山水)'라 당당히 말하고 있다. 경전(經典)이라면 '영원히 변치 않는 법식과 도리를 적은 서적'이라는 뜻인데, 자연 경치의 전범(典範)이라는 말이 아닌가? 차에서 내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비탈길을 오르니, 토가족 아가씨 둘이서 전통복장을 하고 사진 모델을 하고 있다. 바위를 뚫어 만들어놓은 굴속으로 들어가 한바퀴 돌았는데,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이다. 1분 58초만에 110층 높이에 해당하는 313m를 수직 상승하는 이 엘리베이터를 여기 설치하는 일을 누가 생각해냈으며 어떻게 설치했는지 혀가 내둘린다.   

 

 전체 336m 높이인데 실제로 운행하는 거리는 143m의 바위 속을 뚫고 다시 그 위로 170m를 올라가게 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유리 너머로 펼쳐진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버리지 못할 정취다. 바위를 타고 기어오르는 것도 아니고 일순간에 날아 봉우리 끝에 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려서 다시 차 탈 차례를 기다리며 사고 온 군밤을 까먹는다. 천 원에 한 봉지 하는 밤은 작은 것이 야생밤이어서 달고 큰 것은 단맛이 덜하다. 
  

 

* 원가계의 기암 봉우리들

 

△ 위험한 비경(秘境), 원가계(袁家界)

 

 오가는 곳에는 원주민인 토가족이 사는 집들이 보인다. 수도도 없고 우리가 못살던 1960년대 시골의 풍경이다. 그래도 여기저기 틈이 있는 곳을 일구어서 여러 가지 곡식을 심는 밭들이 조성되어 있다. 모처럼 날씨가 좋아서 내어 넌 이불의 모습이 애처롭다.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였을 때 희끗희끗한 눈이 남아 있어 던져버린 짚신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그대로 걸을만하다.

 

 여기저기서 따라오며 짚신 사기를 권유하기에 "뿌요(不要)!"를 외치며 걷는데, 지난번의 눈과 바람에 꺾였는지 너무 심하게 나무들이 넘어져 있다. 같이 간 여행사 사장의 얘기로는 일주일 전에 왔을 때는 나무에 눈이 녹으며 얼어붙어 절경이었다는데, 거센 바람이 불어 모두 꺾인 것이다. 심지어는 낙엽이 다 져버린 나무들도 꺾여 주변이 어지럽기 짝이 없다.


 


 

* 바위 틈으로 보이는 천길 낭떠러지

 

 바로 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로 되어 있는 바위를 돌며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떨어지지 않도록 철책을 해 넣었는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밑에서 올려다보았던 기암 위를 올라와서 이제 내려다보거나 정면으로 보는 것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견디기 힘들겠다.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인 기암(奇巖)들을 일별하고 있노라니, 구름을 타고 떠도는 것 같다.

 

 떠들썩하는 소리가 나서 내려다보니 천하제일교다. 높이 300m가 되는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거의 정상 부근에 와서 맞닿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거기 양쪽에 다리 난간처럼 철책을 해놓았는데, 자물통이 길게 채워져 있다. 연인끼리 또는 신혼 부부가 와서 저 건너에 있는 집 부처님 앞에서 언약을 하고 여기다 채운 뒤 열쇠를 던져 버리면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 때문이다.         
 


 

* 천하제일교에 채워놓은 자물통들


▲ 넋을 빼놓는다는 미혼대(迷魂臺)

 

 앞에 소나무가 너무 운치 있고 멀리로 기암괴석이 늘어선 곳에 정자 하나가 서 있는데, 이름하여 미혼대다. 어디 그곳뿐이겠는가? 보이는 것 모두 넋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워 사진 찍기를 멈추지 못한다. 아무려면 어쪄랴 싶어 비밀리에 챙겨온 캔맥주 하나를 꺼내 신선(神仙) 흉내를 내본다. 스케일이 큰 이런 경치 앞에서 티끌 만한 인간이 부리는 오만(傲慢)이라 여겨졌지만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심호흡 한 번 하고 나니 심신이 상쾌하다.    

 일행이 안 보였으나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을 기다릴 겸 천천히 걸으며 실컷 사진을 찍었다. 천인단애(千 斷崖) 위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 들기도 했으나 소나무와 송글송글 올라오는 참꽃나무의 꽃봉오리를 보는 순간 고향 산천처럼 다시 아늑해진다. 이쯤 되면 조물주의 신기(神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가 몇 억 년 전에는 바다 속이었다가 이렇게 올라왔고 풍화작용을 겪으면서 차차 이런 모습이 된 것이라니….   

 


 

* 천하 제일교 건너에 있는 자물통 파는 집과 불상을 모신 집(위)

 

 그러고 보니 산봉우리(기암괴석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의 모습이 꼭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금강산 봉우리를 묘사 할 때 그랬듯이 그 모습을 말로 다하기는 무리고 사진으로나마 남겨볼까? 그러나, 사진은 사진일 뿐 실제와는 다르다. 더구나 흐릿한 운무가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관계로 사진기가 제대로 역할을 할지도 의문이다.

 

 늦게 도착해보니, 허름한 초가집 주위에 눌러 앉아 차를 기다리고 있다. 차는 계속해서 사람을 실어 나르는데, 눈이 녹아 땅이 질기 때문에 차에 묻을 흙을 생각해서 신발을 문질러본다. 차를 타고 틈틈이 보이는 토가족들의 집을 보면서 얼마 동안 간 후에 차에서 내려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무료했던지 촬영하는 현지인 기사에게 노래를 청해 듣는다.

 


 

* 천하제일교 아래로 보이는 기암

 

△ 모노레일 타고 산수화 보는 십리화랑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차를 타고 조금 나와 내린 곳은 십리화랑 앞이었다. 현지인들이 기념품을 파는 가계를 지나 모노레일 출발지점에 서서 승차를 기다린다. 어제는 금편계곡을 걸어서 구경하더니, 오늘은 십리나 되는 거리 왕복 5㎞ 구간을 모노레일을 타고 가며 구경한다. 하긴 어제 케이블카를 타고 저 기암들을 스치며 구경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오늘 아침은 바위 위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기도 하고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곳 장가계 무릉원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산과 바위를 즐기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못간 부분은 천자산(天子山) 자연보호구 뿐이다. 그곳은 삭도(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긴 거리를 걸어 돌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이곳 십리화랑도 걸어서도 구경할 수 있다. 

 


 

* 십리화랑 모노레일 반환점에 있는 3자매봉

 

 '십리화랑(十里畵廊)'. 이름도 잘 붙였다. 말 그대로 양쪽 산봉우리들을 있는 그대로 산수화처럼 관람한다는 말이니, 기막힌 발상이 아닌가? 일행 중의 몇 사람은 이젠 너무 봐서 질렸다는 표정을 짓는다. 약초 캐는 할아버지 형상을 빼 닮은 채약노인 바위나 식지봉(食指峰), 쥐바위, 3자매봉 등 이름도 그럴 듯하게 붙였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계곡에 물이 없는 게 좀 아쉬운 점이다.

 

 반환점에 한 10분 동안 머무르며 3자매 바위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현지인들이 말라가는 밀감과 옥수수, 밤 등을 팔고, 가게에서는 기념품과 농산물 등이 있다. 겨울에도 노랗게 피어 있는 것이 꼭 산국(山菊) 같은데 잎이 아니다. 모노레일이라 내려서 볼 수도 없고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안 보던 식물인데 국화과에 속하는 들국화의 한 종류다.

 


 

* 황룡동굴의 석주들

 

▲ 엄청나게 넓고 큰 황룡동굴

 

 국내의 동굴밖에 못 본 사람이라면 이곳 황룡동굴에 와서도 "와!와!"하는 탄성을 멈출 수 없다. 지금 관람하도록 개발해 놓은 동굴의 길이가 2.5km, 계단은 2,500개라 한다. 동굴 안에서 보트를 타고 800m 정도 가는 코스도 개발해 놓았다.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후 물의 작용에 의해 변화된 석회암 용암동굴로 4층 정도를 오르내리게 되어 있다. 배에서 내려 바위를 오르노라면 흐르는 폭포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떨어진 물로 패인 바위 암반에 고인 물에는 석회 성분이 쌓여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황룡동굴의 하이라이트는 용궁(龍宮)이라고 하는 곳인데, 갖가지 형태의 종유석과 석순(石筍) 1,000여 개가 숲처럼 빽빽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높이 19.2m, 둘레 40cm인 '정해신침(定海神針)'이란 석순인데, 훼손될 것에 대비해 1998년에 40년간 1억 위안(150억원)의 보험까지 들어놓았다 한다.


 


 

* 1억 위안의 보험을 들었다는 '정해신침(定海神針)'

 

 주차장에서 황룡동굴 입구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데, 다리를 건너면 양쪽에 기념품이나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굴을 돌아 나오려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종유석이 가장 많은 광장은 길이가 200m 높이가 60m 의 대형광장이다. 천정 높이가 100m에 이르는 곳이 있으며, 2개의 하천과 3개의 호수 4개의 연못 등 웬만한 도시크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조명과 함께 종유석과 서순, 석주가 어우러진 환상의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수직고도는 160m, 동굴 길이 전체는 15㎞이며, 이미 개발되어 있는 면적은 20㏊에 달한다. 너무 많아 나중에는 그냥 사진만 찍으며 넘어서 마지막 메아리가 울리는 광장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길에 꽤 괜찮은 모양의 대나무통의 죽통주가 있어 값을 물어보니 만원이란다. 몇 번 물러서는 척했더니 결국 3통에 만원 주고 샀다.

 


 

* 황금빛 나는 석순들

 

△ 중국 보이차 이야기

 

 오다가 찻집에 들렀다. 중국에 여행을 가 본 사람이라면 일정에 없는 찻집을 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 지시가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 알 바는 아니겠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주의 국가에 있는 동안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기회에 중국 차를 마음껏 맛보는 기회로 삼아도 좋으리라. 사든 안 사든 설명을 들으며 차만 음미하면 그만이니까.

 

 근래에 와서 한국 사람들은 보이차(普이茶)를 즐겨 마시고 있다. 보이차는 중국 발음으로 푸얼차라 하는데 경치가 수려한 운남성(雲南省) 서쌍판납(西雙版納), 사모(思茅) 등지에서 생산되는 중국의 명차다.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운남성의 서쌍판납이며, 주로 태족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보이차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운남성 보이현에서 모아 출하(出荷)하기 때문이며, 보이현은 차의 생산지라기보다 중요한 차시장이다.


 


 

* 장가계 바위 위에 있는 소나무들

 

 보이차는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 힘들다. 보이차는 후발효차(後醱酵茶)로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고가품이 된다. 좋은 보이차는 운남 대엽종교목에서 따서 햇볕에 말린 뒤, 통풍이 잘되는 적절한 온도에서 장기보존 중에 진화, 발효시킨 차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보이차는 독특한 맛과 향과 약효를 나타내며, 오랫동안 발효된 차일수록 훌륭한 맛을 내게 된다.

 

 지금 시중에서 접촉할 수 있는 보이차는 만두와 같이 생긴 타차와 아주 단단하게 만든 긴차, 떡차인 칠자병차, 네모진 형태의 벽돌처럼 만든 전차, 송이버섯처럼 생긴 고타차 등이다. 이 중에 칠자병차 인기가 있는데, 이는 개당 375g의 떡차 일곱 덩어리를 모아 포장한 것을 말한다. 근래에 들어 의학계에서 육류를 많이 섭취한 변방 유목민족들이 의외로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 원인를 조사한 결과 그들이 마시는 이 덩어리 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 바위 사이에 있는 소나무들

 

♬ 古箏 연주곡 "漁舟唱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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