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35년만의 나들이(완)

김창집 2005. 6. 22. 16:58

* 지성친목회 완도, 해남, 강진 여행기 (2005. 6. 5.∼6.)

 


 

♧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식사

 

 기념품점 앞에 이르자 무엇을 팔고 있는지 들어가 본다고 모두 들어간다. 모처럼 공금으로 여행을 왔기 때문에 용돈을 쓸 기회가 온 것이다. 누구에게 선물할 것이 있거나 기념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사라고 권하였다. 특히 불교와 관련된 물건이 많아 값이 싸고 다양한 편이다. 이제는 여행가서 돈 하나 안 쓰고 왔다고 자랑하던 시기는 지나갔다. 관광지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라도 사줘야 예의인 것이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절약한다고 슈퍼에 가서 사다가 잔뜩 싸 가지고 가서 현지에 쓰레기만 버리고 온다면 관광지 주민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알뜰 여행을 한다고 집에서 먹을 것을 다 준비하고 차까지 몰고 간다면 지역 당국이나 주민들이 많은 예산을 들여 관광시설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 점으로 본다면 이번 우리 친목회의 여행은 너무 순수하다. 삼다수 한 병 사지 않고 배를 탔으니까.

 


 

 나는 1년에 한두 차례는 꼭 육지부 답사를 기획해 안내하고 다니는 형편이지만 식사는 꼼꼼히 따져 그 지방에 가면 그곳에서 알려진 유명 음식을 꼭 먹어보게 한다. 그 지역 별미라는 것은 그 지역의 기후나 풍토, 문화와 풍속의 총체이다. 그래서 그 음식을 먹어보아야 그 지역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외국에 가서 돈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만 이왕 식사 값을 낸 바에야 고추장이나 김치 없이 그 맛을 보며 먹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어제 술은 꽤 많이 한 편이지만 늦도록 마시지 않아서 누구 하나 술 마셨던 기색이 없다. 그렇지만 아침이어서 이곳의 주 메뉴인 산채정식, 버섯전골 같은 것은 그렇고 시원한 콩나물해장국을 먹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오다가 모두 칡즙 한 컵씩 마셨다. 그래도 아침이지만 이곳 토속주의 맛을 보고 가자고, 해장 삼아 이곳의 약재가 많이 들어갔다는 약주를 한 통 불러 마셨다. 들큼하니 시원하고 맛이 있다.

 

 


 

♣ 강진으로 가는 길

 

 오후 3시 반까지 완도 카페리 터미널에 도착하라고 했다면서 완도에 가서 마음놓고 놀자고 하는 친구들과 강진을 간다니까 강진에 가는데 몇 시간 오는데 몇 시간 걸리는가 따지는 아줌씨들의 성화에 내가 언제 당신들을 실망시킨 적 있냐고 대답하고 나서 운전석 옆에 앉아 해남으로 차를 몰게 했다. 정말이지 친구들 중에는 내가 나이가 제일 어리고 아줌씨들보다는 위지만 야유회나 모임 때나 오랫동안 앞장서 일해 왔기 때문에 내 얘기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파심이 발동했나 보다.

 

 해남에서 18번도로를 따라 가서 강진으로 들어서서 영랑생가 입구 가기 전에 왼쪽 버스 터미널 쪽으로 돌아 청자박물관이 있는 대구면으로 23번 도로를 탔다. 강진이라면 옛 이름이 탐진(耽津)으로 옛날 탐라로 가는 나루터다. 지금도 마량에 가면 그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까지도 이곳에서 나는 옹기를 배에 가득 싣고 제주도로 와서 해안가를 돌며 곡식과 바꿔 오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들르기도 하고 추억도 많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정식(定食)을 찾아갔다가 실망한 일이나, 둘이서 술로 날밤을 새운 뒤 아침 일찍 우시장 찾아가서 막걸리 한 잔 하고 운동 삼아 마구 걸어가다 논두렁의 콩잎을 한 움큼 뜯어다 나누어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나, 세발낙지가 너무 비싸 싼 곳을 찾아다니던 일, 오름 팀을 인솔해 영랑생가 갔다가 대낮에 비를 쫄딱 맞던 일, 그리고 일행 중 지인(知人)을 만나 고금도까지 가서 홍어 한 마리를 다 먹어치운 일 등….


 

 나는 서민 체질이어서 청자보다는 옹기가 더 좋다. 이곳 강진에는 예부터 흙이 좋아 청자와 옹기가 많이 난다. 지금의 옹기 마을은 사정이 조금 폈지만 1900년대 말만 해도 수요가 없어 가마가 한 집만 남아 이곳에 오게 되면 꼭 들리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진 청자 박물관을 찾은 이유는 이 어른들에게 눈요기 만으로라도 고려청자의 본향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 어엿한 강진 청자 박물관

 

 이번에 관광은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진 것이어서 짧은 시간이지만 대흥사와 강진 청자 박물관을 꼭 보여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왔다. 이젠 제주도에서도 온천욕도 할 수 있고 해수사우나와 찜질방 등 온갖 목욕시설의 극치를 이루었다. 당연히 관광객을 위한 것이겠지만 언제나 외지인들만으로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비수기나 붐비지 않는 시간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할인해주기 때문에 그전처럼 육지에 나오면 꼭 온천에서 푹 담그고 가지 않아도 된다.

 

 더욱이 여름이고 보면 온천을 가는 것도 시간 낭비이겠고 무엇을 보여 줄까 고민하다가 강진으로 가서 고려청자도 보여주고 시간이 충분하면 장흥에 가서 갯장어로 점심을 먹고 오다가 다산초당이나 들리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강진만(康津灣)이 북쪽으로 쑥 들어와 있어 2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서 전형적인 시골 모습을 음미한다. 가끔 바다도 보이고 논과 밭이 이어진다. 이 쪽 강진에만 오면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져서 자주 들르는 곳의 하나이다.

 


 

 

 그래서 박물관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봐왔으나 오늘 도착해보니 주차장도 넓어지고 들어서자마자 돌하르방이 인사한다. 제주도에 있는 강진군민회에서 보내준 것이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117번지에 자리한 강진청자 박물관은 강진군 청자사업소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주변에는 도자기 판매 전시장도 여럿 있다. 전시장으로 통하는 곳에는 커다란 청자를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그래서 1964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서 지표 조사된 청자가마터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량이다. 이에 고려청자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를 위하여 1997년 9월에 '강진청자 자료박물관'을 개관하였다.

 

 


 

♣ 청자의 집산지 강진군

 

 이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청자박물관으로 고려청자의 수집, 전시, 연구, 교육 등을 통하여 청자문화의 계승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기존 박물관과 다른 전시 방법과 유적지 주변에 세워진 역사성으로 현재 추진 중인 공립박물관의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작업장이 세워져 우리나라 청자의 과거 및 현재를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연면적 2,108㎡(638평), 지하 1층, 지상 2층의 본관 건물에는 기획전시실, 유물전시실, 그리고 가마터와 가마 모형실도 있다. 소장품을 보면, 188기 청자 가마터별 지표 조사품으로 완품 73점, 파편 3만여 점을 모았고, 완품 60점과 파편 410점을 갖가지 형태로 전시 중이며, 미리 신청만 하면 청자 빚기 체험도 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사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것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 예술품으로 비색 상감무늬는 기술과 아름다움의 극치로 표현되고 있으며 인공을 떠난 천공의 경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청자는 중국에서 5∼6세기경부터 생산했으며, 우리나라는 8∼9세기경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강진에서는 20km 떨어진 청해진에서 중국과 무역을 활발히 전개한 장보고 대사의 활동의 영향을 받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14C 쇠퇴기까지 고려 500년 동안 대구면 정수사에서 미산까지 6km의 산하에서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하였다.


 

 우리나라 국보, 보물급 청자 중 80%가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세계 여러 곳에 귀중품으로 보존되어 있는 명품들 대부분이 강진의 작품들이다.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400여기의 옛 가마터 중 188기의 가마터가 강진에 현존하고 있는 만큼 청자의 집산지로, 강진이 청자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점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다른 지방에 비하여 태토, 연료, 수질, 기후 등 여건이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 그냥 다시 완도로

 

 전시실을 둘러본 일행은 기념품 판매소에 들렀다. 예쁘고 조그맣게 만들어진 자기들이 의외로 값이 싸다. 이것저것을 만져보다 나중에 판매전시장에 가서 사기로 하고 나와서 가마 모형과 가마 발굴지를 보고 나왔다. 바깥에 있는 판매장에 가서 구경도 하고 필요한 것들을 기념 삼아 샀다. 어찌 보면 다 갖고 싶기도 하고 욕심을 빼버리면 하나도 살 것이 없다. 그래도 기념으로 삼으려고 예쁜 컵 2개 샀다.

 

 차에 오르자마자 빨리 가자고 재촉이다. 남자들은 장흥 가서 갯장어를 먹었으면 했으나 여자들은 혹시 길이 막힐지 모르니까 완도에 가서 마음놓고 맛있는 것을 사먹자고 했다. 여자들이 엊저녁에 맛있는 것 사 먹기로 해서 화투판을 벌여 1만2천 원 따놓은 것을 집행하자고 졸라 강진농협 하나로 마트에 차를 세우고, 그 돈으로 참외를 사고 공금을 타내어 1만 5천 원 짜리 수박을 사오니, 이번에는 칼이 없어서 2층에 올라가 도로코 과도 5천 원짜리를 사왔다.    

 


 

 오는 길에 다산초당에 들리려 했으나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생략하자고 해서 참외를 벗겨 먹으며 차를 씽씽 몰았다. 남창 조금 못 미쳐 차가 밀렸으나 얼마 안되어 트였고, 오다가  불목리 청해진 옛터에 들러 멀리 세트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쉰 다음 완도읍내에 도착하여 어시장에 갔는데, 아침에 경매가 끝나 고기가 얼마 안 남아 있었다. 활어는 거의 판매해 버리고 남은 건어물과 생선은 아주 값이 싸다.

 

 다시 카페리 선착장 쪽으로 와서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결국 바닷장어 매운탕을 먹기로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호남 지방에서는 반찬 가짓수도 많고 맛이 있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밥을 먹을 수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보해소주를 불러 다시 한 잔 기울였다. 이번 답사는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내면서도 취하는 일은 없었다.

 

 


 

♣ 제주로 가는 카훼리에서

 

 배에서 마지막 파티를 위하여 회와 멍게, 그리고 소주 5병을 샀다. 배는 3시 반에 한 번 있는 날이어서 손님이 가득하다. 우리들처럼 연휴를 이용해서 나들이 왔다가 돌아가는 아는 얼굴들도 보인다. 여친네들은 아예 2등 선실에 자리잡아 드러눕고 남친들은 갑판 한 쪽 구석에 자리잡고 술판을 벌인다. 옆에 제주로 오는 손님인데 준비를 못했는지 맥주와 햄을 먹다가 소주를 마시고 싶은지 자꾸 눈길을 보내기에 소주 1병과 안주를 나누어주니 고마워 한다.


 동창들에 대한 이런 저런 소식, 집안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결국 정력 문제에 이르고 말았다. 한 친구가 허리가 아파 지네를 고아 먹다보니 정력이 좋아져 지금도 장난이 아니라고 해서 웃었다. 비아그라를 먹어봤는지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지네를 많이 고아먹은 친구를 빼고는 모두 그전보다 못하다는 얘기다. 하긴 60을 바라보는 나이인 걸 어쩌겠는가?

 


 

 오는 길에도 안개는 시원히 걷히지 않아 섬 사진도 못 찍고 계속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남은 큰 통의 맥주를 비우며 이번 여행이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좋았다고 다시 한 번 나오자고 한다. 그러나 언제 다시 이 친구들과 이렇게 나올지 모르겠다. 다음에 오게 되면 갈 때는 비행기편을 이용하고 올 때는 배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벌써 안개 속에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없어 도착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배에서 내려 차 3대를 빌려 나눠 타고 보신탕 집으로 달렸다. 배에서 정력 얘기를 많이 해서 보신탕이 부쩍 당기는 모양이다. 1박2일 동안 같이 여행한 것은 몇 년 전 추자도에 갔을 때와 이 번 두 차례다. 보신탕을 맛있게 먹으며 '우리 건강하게 살아 자주 여행 가자'며 헤어졌다. 해외로 육지로 답사를 그렇게 다니면서도 이번처럼 여유 있고 뜻깊은 여행은 처음이다. 혼자 택시를 타고 오면서 친구들의 건강을 빌어본다. (끝).

 

 

♬ Love at The Hop --- BMX Ban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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