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35년만의 나들이(1)

김창집 2005. 6. 13. 14:40

* 지성친목회 완도, 해남, 강진 여행기 (2005. 6. 5.∼6.)

 


 

* 오랜만에 탔던 한일카페리 1호

 

 

△ 35년만의 나들이

 

 60을 바라보는 친목회원들이 모처럼 첫 뭍나들이를 했다. 6월 5일 일요일과 6일 현충일을 묶어 회원 5명과 그들의 부인 4명을 합해 9명. 지독히도 못 살던 시절, 농촌에서 두 친구가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계기로 10사람이 모여 친목회를 만들었다. 어렸을 때 4. 3을 견뎠고, 그 어려운 보릿고개를 넘긴 세대여서 동년배 모임인 갑장회도 조직 못했고, 초등학교 동창회도 결성 못한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죽이 맞은 10명이서 동창회 겸 친목회를 만들었는데, 일본도 가버리고 탈퇴도 하고 저 세상으로 먼저 가버리기도 해서 이제는 6명만 남았다. 언제 여행이라도 가보자고 자금은 많이 모았는데 너무 바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관계로 도저히 사나흘의 시간을 같이 낼 수 없어 밖으로 여행 나가는 일은 못 하고 살아왔다. 아등바등 살다 보니, 이제 모두 밥을 먹고 살 형편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 물보라 너머로 멀어지는 제주항

 

 돈은 있는데도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대신 아직도 어머니 아버지 제사는 꼭 보러 다닌다. 같이 자라고 모임을 오래 갖다 보니 친구 부모님이 내 부모님 같았고, 부모님 역시 아들 대하듯 했기 때문에 요즘엔 먼 친척도 제사 보러 안 다니는데, 이것만은 오래 갈 것 같다. 하긴 한 번 제주섬을 떠난 적은 있다. 모임 30주년이 되는 해 1박2일로 추자도에 다녀온 것이다.

 

 그 때도 가장 바쁜 한 친구는 출발 직전에 아들이 교통 사고를 당해 함께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부인은 지병이 있어 못 오고 친구는 사업상 참여하지 못했다. 이 놈을 보면 꼭 고생을 위해 태어난 것 같다. 모친의 노환 때문에 나는 집사람과 둘 중의 한 사람밖에 참여 못했지만, 이번 여행 중에도 건강에 이상이 있는 두 부인이 참가했다. 한 분은 비만으로 무릎 수술을 여러 번 해서 멀리 걷기 힘든 상태이고, 한 분은 암으로 작년부터 투병 중이다.

 

 


 

*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섬들

 

 

▲ 오랜만에 타는 카훼리호

 

 "부웅―" 정각 9시가 되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뱃고동을 울리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들뜨기 시작하고 뭔가 가슴에 진한 감동이 전해진다. 나만이 아니라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아니, 일행 중에 실제로 예순이 된 친구도 있다.--에도 모두들 갑판 위로 올라와 앉아 그런 느낌을 감추지 못한다. 

 

 그 동안 외국이며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도 배는 정말 오랜만이다. 기억으로는 재작년  탐문회에서 목포와 진도를 비롯한 서남해안 답사에서 돌아올 때 배를 타보고는 2년 만에 처음이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배 삯이 비행기 삯보다 싸다는 점 이외에도 낭만이 있다는 점이다. 3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여행 중 있었던 일을 정리한다든가 집에 돌아가서 우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할 수도 있고, 완도항에서 회(膾)를 떠가지고, 바다를 바라보며 환담을 나누면서 술 한 잔 하다보면 어느덧 도착 시간이 되는 것이다.


 


 

* 완도항에 있는 아름다운 섬 주도

 

 3시나 4시 또는 4시 반에 배를 타면 7시쯤 꼭 알맞은 시간에 내려 저녁을 먹고 해어질 수도 있고 직장에서 돌아온 가족들이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오는데도 아무 무리가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출발할 때는 그렇지 않다. 9시에 배를 타서 12시 반이 되어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나면 2시가 돼버려 빌린 차량도 그렇고 그 날 일정도 그렇고 어정쩡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배타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 있어 처음부터 진을 뺀다고 하기도 하고, 모처럼 2박3일 정도 시간을 내어 답사 가는데 하루를 효과적으로 보내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제주항에서 멀어지자 사방이 안개로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무료하기 짝이 없다. 여행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은 회를 사다가 갑판 위에서 술자리를 벌이는 축도 있어, 우리는 준비 못한 것을 후회하며 매점에서 주류 중 유일하게 파는 맥주를 사다가 옛 이야기를 하며 홀짝였다. 딴 답사 같으면 미리 계획을 세워 빡빡하게 진행시킬 일이지만 이 친구들은 그 쪽에 관심이 없어서 이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낼까 걱정이다. 더욱이 아픈 두 사람이 있고 보니. 그래서 관광지 위주로 천천히 다니면서 맛있는 거나 사 먹여야지 결심하고 만다.

 

 


 

* 그릇 속에서 살아숨쉬는 물오징어와 성게

 

 

△ 회 먹으며  보낸 2시간

 

 여서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연이어 보길도와 신지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나타난다. 안타까운 것은 안개가 끼어 있어 섬들을 예쁘게 찍을 수 없다는 일이다. 꾹꾹 눌러 참으면서 눈앞에 동그랗고 예쁜 주도(珠島)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완도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언제나 이곳을 지날 때는 저곳에 집을 지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주도는 완도 카훼리 터미날에서 300m쯤 떨어져 있는 둥글고 작은 섬으로 섬 전체가 상록수림들로 빽빽한 곳이다. 참식나무, 돈나무, 사스레피나무, 붉가시나무, 메밀잣밤나무, 광나무, 다정큼나무, 가마귀쪽나무, 감탕나무, 빗죽이나무, 생달나무, 검양옻나무, 소사나무, 느티나무, 청가시덩굴, 인동덩굴, 덜꿩나무, 고란초 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난대림의 모습을 가장 잘 유지, 보존되고 있어 학술연구에 귀중한 자원이다. 천연기념물 2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 해신 세트장 1

 

 몇 년 전만 해도 완도 카페리 터미널 가까운 해안에서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집에서 잡아온 고기들을 그릇에 살려놓고 관광객들에게 싸게 팔아주어 부담 없이 회를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 건물 안으로 유치하다 보니 전부 상인들로 바뀌어 아침에 조금 떨어져 있는 수산시장에서 고기를 사다 팔기 때문에 가격을 담합해서 너무 비싸다. 야외에서 먹기 때문에 불결하고 위생에도 문제가 있다.


 

 고추장이나 상추도 돈을 줘야 하고 매운탕 끓이는 것도 달리 돈을 줘야 하니 싼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그곳을 가지말고 적게 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깨끗한 식당에 가서 많은 반찬도 먹고 대접받는 편이 좋겠다. 우리는 4.5kg 나가는 상어 한 마리를 8만원 주고 샀고, 상어에서 매운탕거리가 안 나온다고 2만 원어치 우럭을 더 샀다. 매운탕은 한 냄비 끓이는 데 3천 원, 대신 술을 사오면 슈퍼 가격으로 마실 수 있다.

 

 


 

* 해신 세트장 입구의 기념 촬영하는 곳

 

 

▲ 겨우 빌린 15인승 렌트카   

 

 나는 좀 떨어져 있는 슈퍼에 가서 소주 1되와 포천막걸리 1병을 4,500원에 샀다. 1병에 3천원 하는 2홉 소주 1병 반 값이다. 그러나, 건물 뒤 탁자에서 먹다 보니까 햇빛이 비춰서 덥고 지저분하고, 반찬은 김치 한 가지에 매운탕 끓이는 곳이 밀려 2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 사이에 상어도 다 먹고 다시 가서 낙지 2만원 어치, 야채, 종이컵 등을 사다 보니, 별로 싼 것 같지도 않았다.


 

 터미널에서 전화번호부를 빌려 적어놓은 렌트카에 전화를 넣었더니, 차가 없다고 한다. 무슨 수가 없나 하고 다시 터미널로 가서 거기 있는 번호를 다 돌렸더니, 한 곳에서 얼마 없어 들어올 차 1대가 있다고 했다. 그 거라도 빌겠다고 했더니 얼마 없어 터미널로 차를 갖고 와서 2시 30분부터 내일 2시 30분까지 24시간 동안 19만원을 주고 빌렸다. 기름은 반쯤 남아 있었는데 내일 돌려 줄 때 그만큼 채워놓으면 된다고 했다.


 


 

* 해신 세트장 2

 

 완도는 면적 50.2㎢의 군으로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3)에 장보고가 장좌리에 있는 장도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설치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동쪽은 강진현에, 서쪽은 해남현에 속했다. 조선시대인 1552년(명종7)에 군내리에 가리포진이 설치되었다가 1896년 완도군의 신설로 군내면이 되었다. 1922년 완도면으로 개칭되고, 1942년에는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섬의 북부는 군외면, 남부는 완도읍으로 관할구역이 나누어졌다.


 

 완도는 제주로 통하는 여객선 터미널을 만들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사적이나 보물이 별로 없고, 고작해야 정도리의 구계등이 명승지인데 바다와 해수욕장을 끼고 사는 제주 사람들은 별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인기리에 끝난 해신(海神) 촬영지인 '신라방' 세트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렌트카 가지고 온 분이 완도읍 군외면 불목리 세트장에 데려다 주고 간다. 차가 조금 밀려 있어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들어갔다.
 

 

* 해신 세트장 3

 

△ 불목리 해신 촬영 세트장 '신라방'

 

 그 인기를 실감하듯 임시로 만든 주차장엔 관람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초입부터 온통 해신 깃발이고 종업원이나 안내인들도 해신(海神) 글자 무늬가 찍힌 옷을 입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자 출연진들이 늘어서서 환영한다는 현판이 기다리고 있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걸어 아래로 내려가니, 3만평 부지에 신라촌을 재현해 놓고 있었다. 본영(本營)을 비롯해서 객사, 민가, 중국거리, 설평상단, 이도형상단의 무역품 거래 및 상인 숙소 등 40여 동의 기와집과 수로시설을 갖추고 있다.

 조령 삼관문의 왕건 세트장에서는 스치로풀과 같은 재료로 엉성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곳은 그런 대로 모양을 갖췄다. 하지만 상륙해놓은 배 1척은 전체가 사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낙서 덩어리고, 메어놓은 배는 아래쪽이 썩어 속을 내보이고 있다.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올인' 세트장도 그렇지만 어차피 관광지로 활용할 거면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당국과 방송국이 손을 잡고 잘 만든 곳도 있다는데.


 


 

* 해신 세트장 '양주'

 

 지나간 장면을 떠올리며 부두에도 가보았고 항주문도 지나 보았는데 곳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멀리 세워놓은 해적선과 무역선만이 고즈넉이 예스러워 보이고 가까이서 본 것들은 아무래도 세트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염장의 진영에서 정화가 거쳐했던 막도 보이고 부두도 보이는데 눈앞에 우뚝 솟아 세트장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숙송봉도 볼거리다.

 

 오다가 보았지만 본래 청해진 옛터로 추정되는 대신리의 소세포 세트장은 1만 6천평 부지에 옛 청해진을 재현해 놓았다. 크고 작은 선박 6척이 바다에 떠 있고, 포구엔 저잣거리, 군영막사, 망루등 청해진 본영과 신라왕궁을 재현해 놓고 있다. 세트장으로는 국내 최초로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해 놓을 정도다. 세트장을 나와 완도 섬 서쪽 해안선으로 돌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연휴를 맞아 이곳을 찾는 차들의 행렬이 완도다리 근처까지 이어졌다.(계속)

 


 

* 해신 세트장 옆에 우뚝 솟은 숙송봉

 

♬ Lobo의 음악 연속 듣기

'국내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35년만의 나들이(3)  (0) 2005.06.19
35년만의 나들이(2)  (0) 2005.06.15
남해 금산 답사기 (3)  (0) 2004.07.25
남해 금산 답사기 (2)  (0) 2004.07.23
남해 금산 답사기 (1)  (0) 200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