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가리켜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제주에서 직행을 타지 못한 우리 일행 14명이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 가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아예 종이 팩에 든 주스 하나씩을 주고 입을 닦아 버린다.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간단한 면세품을 파는 기내 장사도 생략할 정도였으니까…. 어렸을 적 우리 나라 지도를 그릴 때 제주도 오른쪽이 허전하여 그렸던 쓰시마(對馬島)는 벌써 지난 것 같다. 하긴 조선 영조 때 김인겸이 일본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그 다음 해 돌아올 때까지의 견문을 기록한 기행 가사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를 보면 당시는 배로 가기가 꽤 어려운 먼 나라였던 모양이다.
"등뒤를 돌아보니 동래 산이 눈썹만큼 보이고, 동남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어 위아래 푸른빛이 하늘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인가? 함께 떠난 다섯 척은 간 곳을 모르겠다. 사면을 두루 살펴보니 가끔 물결 위로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 하는구나. 배속을 돌아보니 저마다 뱃멀미를 하여 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러쳐 있네. 다행하구나. 종사상은 태연히 앉아 있어, 선실로 들어와 눈을 감고 누웠더니, 대마도가 가깝다고 사공이 외친다. 다시 일어나 선실 밖으로 나와보니 대마도가 아직도 십리는 남았구나."
얼마 안 가 구름 사이로 바다와 섬이 보이자, 기내 방송은 이제 곧 내릴 것이라고 벨트를 점검하란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난다. 태평양전쟁이 극에 달할 무렵인 1944년에 뒤늦게 노무자로 징용되어 군대환을 타고 이곳 후쿠오카(福岡)로 홋카이도(北海島)에 석탄 캐러 갔다가 이듬해 해방이 되어 1년 2개월만에 귀국했던 곳이다. 생전의 얘기로는 돌아오다가 이곳에서 오사카(大阪)로 가서 사촌 누이동생네나 처가에 들르러 했으나, 돈도 없고 말도 몰라 그냥 귀국했다는 것이다. 당시 처자식을 두고 언제 돌아올지도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땅 설고 물 설은 곳으로 가면서 얼마나 암담해 했을까?
그러나 지금 나는 그들의 모습을 살피면서 조금은 여행의 재미를 즐기기 위해 기약된 길을 편안하게 앉아서 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옆자리에서 권하는 레미 마티니를 찔끔찔끔 즐기면서---. 이쯤 되면 50여 년을 사이에 두고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오늘(10월3일)은 후쿠오카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가라스 나고야성 도착에 도착하여 3박4일 동안 우리의 문화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들은 어떤 속셈을 갖고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며, 또 20세기 들어 왜 우리 강토를 강점하여 36년간 통치했는지 알아보려 한다. 이제 와서 그냥 미워 할 수만은 없지만, 아직도 그들은 전범(戰犯)인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며 독도를 자기네 땅, 동해는 일본해라고 우기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인 것이다.
▲ 큐슈(九州)는 어떤 섬인가
큐슈는 일본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다. 면적 42,142㎢에 인구 약 1,329만(1997)이 살고 있다는데 본섬과 이키섬, 쓰시마섬, 고토열도, 아마쿠사제도, 사쓰난제도 등 1,400여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쿠오카(福岡), 사가(佐賀),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구마모토(熊本), 미야자키(宮崎), 가고시마(鹿兒島) 등 7개 현(縣)을 포함하고, 행정구역상 넓게는 오키나와현(沖繩縣)까지도 이곳으로 넣는 경우가 있다.
북부지역에는 쓰쿠시 산지(筑紫山地)가 동서로 달리고, 그 남쪽에 지쿠고강(筑後川)이 형성한 쓰쿠시 평야가 펼쳐진다. 중부 화산지역은 구니사키 반도에서 시마바라 반도에 미치며, 큐주(九重), 아소(阿蘇), 운젠(雲仙) 등 화산이 분출하고 온천도 많다. 큐슈 산지는 1,757m의 소보산(祖母山), l,739m의 구니미산(國見岳) 등이 솟아 있는 장년기 산지로 남·북 큐슈의 교통 장애가 되고 있으며, 구마강, 고카세강 등 수량이 풍부한 하천들이 많아 큐슈의 전원지대가 되었다. 남부 화산지역은 미야자키현 남부와 가고시마현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화산회 대지인 시라스 대지를 넓게 분포시키고, 기리시마산(霧島山), 사쿠라지마섬(櫻島), 가이몬산(開聞岳) 등이 분출하는 기리시마 화산대는 사쓰난 제도에서 오키나와 제도로 이어진다.
기후는 전국에서 가장 따뜻하고 비가 많으며, 특히 큐슈 산지 이남은 연평균 기온 16℃ 이상의 온난지대가 되고 해안부에서는 아열대성 기후를 보여 빈랑, 소철 등이 무성하다. 그러나 큐슈 산지 이북에서는 1월 평균 기온이 4.7∼5.3℃를 보여 눈은 쌓이지 않을 정도로 몇 차례 가볍게 내린다. 강수량은 일부 세토나이카이 연안을 제외하고는 전역이 연간 1,500mm 이상이고, 남부에서는 2,000∼3,000mm 정도이다.
대륙에 가까운 큐슈 북부 지방은 일찍이 대륙 문물에 접했기 때문에, 야마토지방(大和地方, 현재의 나라현)과 함께 일본 고대문화인 야요이식 문화의 2대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고, 그 뒤 대륙과의 사이에 정식 거래가 이루어지자 대외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13세기 후반에는 2차에 걸쳐 원(元)의 침입을 받았으며, 에도(江戶) 시대에는 조총(鳥銃), 그리스도교 등 유럽 문물이 이곳을 거쳐 전래됨으로써 일본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한반도를 진격하면서 병력을 집결시켰던 출병기지 사가현 나고야 성터와 태평양전쟁의 종료를 알리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 그리고 아직도 불을 뿜는 활화산이 있는 섬이다. 어떻든 우리와는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많은 곳이 아니던가?
<사진> 위는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아소산의 화산 폭발 모습이고, 가운데는 임진왜란 때 출병기지인 나고야 성터, 아래는 원폭의 흔적으로 평화공원 한쪽에 남아 있는 적십자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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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가리켜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제주에서 직행을 타지 못한 우리 일행 14명이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 가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아예 종이 팩에 든 주스 하나씩을 주고 입을 닦아 버린다.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간단한 면세품을 파는 기내 장사도 생략할 정도였으니까…. 어렸을 적 우리 나라 지도를 그릴 때 제주도 오른쪽이 허전하여 그렸던 쓰시마(對馬島)는 벌써 지난 것 같다. 하긴 조선 영조 때 김인겸이 일본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그 다음 해 돌아올 때까지의 견문을 기록한 기행 가사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를 보면 당시는 배로 가기가 꽤 어려운 먼 나라였던 모양이다.
"등뒤를 돌아보니 동래 산이 눈썹만큼 보이고, 동남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어 위아래 푸른빛이 하늘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인가? 함께 떠난 다섯 척은 간 곳을 모르겠다. 사면을 두루 살펴보니 가끔 물결 위로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 하는구나. 배속을 돌아보니 저마다 뱃멀미를 하여 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러쳐 있네. 다행하구나. 종사상은 태연히 앉아 있어, 선실로 들어와 눈을 감고 누웠더니, 대마도가 가깝다고 사공이 외친다. 다시 일어나 선실 밖으로 나와보니 대마도가 아직도 십리는 남았구나."
얼마 안 가 구름 사이로 바다와 섬이 보이자, 기내 방송은 이제 곧 내릴 것이라고 벨트를 점검하란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난다. 태평양전쟁이 극에 달할 무렵인 1944년에 뒤늦게 노무자로 징용되어 군대환을 타고 이곳 후쿠오카(福岡)로 홋카이도(北海島)에 석탄 캐러 갔다가 이듬해 해방이 되어 1년 2개월만에 귀국했던 곳이다. 생전의 얘기로는 돌아오다가 이곳에서 오사카(大阪)로 가서 사촌 누이동생네나 처가에 들르러 했으나, 돈도 없고 말도 몰라 그냥 귀국했다는 것이다. 당시 처자식을 두고 언제 돌아올지도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땅 설고 물 설은 곳으로 가면서 얼마나 암담해 했을까?
그러나 지금 나는 그들의 모습을 살피면서 조금은 여행의 재미를 즐기기 위해 기약된 길을 편안하게 앉아서 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옆자리에서 권하는 레미 마티니를 찔끔찔끔 즐기면서---. 이쯤 되면 50여 년을 사이에 두고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오늘(10월3일)은 후쿠오카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가라스 나고야성 도착에 도착하여 3박4일 동안 우리의 문화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들은 어떤 속셈을 갖고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며, 또 20세기 들어 왜 우리 강토를 강점하여 36년간 통치했는지 알아보려 한다. 이제 와서 그냥 미워 할 수만은 없지만, 아직도 그들은 전범(戰犯)인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며 독도를 자기네 땅, 동해는 일본해라고 우기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인 것이다.
▲ 큐슈(九州)는 어떤 섬인가
큐슈는 일본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다. 면적 42,142㎢에 인구 약 1,329만(1997)이 살고 있다는데 본섬과 이키섬, 쓰시마섬, 고토열도, 아마쿠사제도, 사쓰난제도 등 1,400여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쿠오카(福岡), 사가(佐賀),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구마모토(熊本), 미야자키(宮崎), 가고시마(鹿兒島) 등 7개 현(縣)을 포함하고, 행정구역상 넓게는 오키나와현(沖繩縣)까지도 이곳으로 넣는 경우가 있다.
북부지역에는 쓰쿠시 산지(筑紫山地)가 동서로 달리고, 그 남쪽에 지쿠고강(筑後川)이 형성한 쓰쿠시 평야가 펼쳐진다. 중부 화산지역은 구니사키 반도에서 시마바라 반도에 미치며, 큐주(九重), 아소(阿蘇), 운젠(雲仙) 등 화산이 분출하고 온천도 많다. 큐슈 산지는 1,757m의 소보산(祖母山), l,739m의 구니미산(國見岳) 등이 솟아 있는 장년기 산지로 남·북 큐슈의 교통 장애가 되고 있으며, 구마강, 고카세강 등 수량이 풍부한 하천들이 많아 큐슈의 전원지대가 되었다. 남부 화산지역은 미야자키현 남부와 가고시마현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화산회 대지인 시라스 대지를 넓게 분포시키고, 기리시마산(霧島山), 사쿠라지마섬(櫻島), 가이몬산(開聞岳) 등이 분출하는 기리시마 화산대는 사쓰난 제도에서 오키나와 제도로 이어진다.
기후는 전국에서 가장 따뜻하고 비가 많으며, 특히 큐슈 산지 이남은 연평균 기온 16℃ 이상의 온난지대가 되고 해안부에서는 아열대성 기후를 보여 빈랑, 소철 등이 무성하다. 그러나 큐슈 산지 이북에서는 1월 평균 기온이 4.7∼5.3℃를 보여 눈은 쌓이지 않을 정도로 몇 차례 가볍게 내린다. 강수량은 일부 세토나이카이 연안을 제외하고는 전역이 연간 1,500mm 이상이고, 남부에서는 2,000∼3,000mm 정도이다.
대륙에 가까운 큐슈 북부 지방은 일찍이 대륙 문물에 접했기 때문에, 야마토지방(大和地方, 현재의 나라현)과 함께 일본 고대문화인 야요이식 문화의 2대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고, 그 뒤 대륙과의 사이에 정식 거래가 이루어지자 대외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13세기 후반에는 2차에 걸쳐 원(元)의 침입을 받았으며, 에도(江戶) 시대에는 조총(鳥銃), 그리스도교 등 유럽 문물이 이곳을 거쳐 전래됨으로써 일본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한반도를 진격하면서 병력을 집결시켰던 출병기지 사가현 나고야 성터와 태평양전쟁의 종료를 알리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 그리고 아직도 불을 뿜는 활화산이 있는 섬이다. 어떻든 우리와는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많은 곳이 아니던가?
<사진> 위는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아소산의 화산 폭발 모습이고, 가운데는 임진왜란 때 출병기지인 나고야 성터, 아래는 원폭의 흔적으로 평화공원 한쪽에 남아 있는 적십자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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